가뭄없는 파주들판 만드는 ‘파수꾼’
지난 1996년과 1999년 두차례에 걸쳐 경기북부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파주지역은 임진강 최전선 양수장(현 대단위 양수장)이 무려 16m 이상 침수되는 등 경기지역의 대표적인 침수지역으로 손꼽혀 왔다.
그래서 파주시민들과 농민들은 “장마는 걱정해도 한해(旱害)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해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농번기에 물길을 대지 못해 모심기가 두달 가까이 지연되면서 일부 농민들은 농사를 어쩔 수 없이 접어야 했다.
이에 자기 논과 밭에 먼저 물을 대달라며 성난 농심이 폭발하면서 이 지역 민심은 점점 흉흉해졌다. 올해도 역시 상황은 비슷하게 전개됐다.
지난 겨울부터 마른 가뭄이 넉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파주지역 저수율이 한때 50% 아래로까지 떨어졌다. 특히 파주지역 농업용수 공급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임진강 유역이 계속되는 가뭄으로 말라 들어가면서 염도가 급상승해 농사를 짓기에는 부적합한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한국농어촌공사 파주지사 직원들은 농업용수의 원활한 확보를 위해 임진강에 직접 몸을 담가 뻘 해체 작업에 나서는 것도 모자라 양수장의 보수·유지 관리를 위해 밤샘작업도 마다하지 않는 등 가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매일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임진강이 예사롭지 않다!
임진강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으로, 유량이 풍부하지 못하면 밀물 때 바닷물이 올라오면서 염도가 높아져 농업용수로 사용하지 못한다.
최근에는 가뭄이 이어지면서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있는 최대치인 염도 500ppm을 넘기는 것도 다반사다. 또 민통선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공덕양수장은 높은 염도에다 갯벌 퇴적으로 가동이 중단된 상태.
이에 파주지사 직원들은 지난 3월말부터 4월초까지 직원들이 직접 임진강에 뛰어들어 뻘 해제 작업을 벌여 하루 45만t의 농업용수를 확보했다. 또 중단된 공덕양수장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인근 임시 양수장부터 통일대교를 건너 공덕양수장까지 이어주는 호수를 직접 설치, 매일 부족한 물을 채워 나가고 있다.
윤진덕 파주지사 직원은 “지난해부터 강우량이 예년에 비해 40%가까이 줄어들면서 파주지역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또 임진강 수량마저 북측이 댐을 건설해 물길을 돌리면서 수량이 부족해 염도가 높아 농업용수로 사용하기가 쉽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하늘만 바라볼 수 없다’… 중장기적인 대책이 우선돼야
비 소식에만 의존해 한해를 최소화 할 수 없고, 북측의 협조를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게 파주지사 직원들의 한 목소리다.
이에 파주지사는 염해의 영향을 덜 받는 임진강 유역 대단위 양수장에서 임진과 공덕양수장 구역에 대한 보충급수에 나서는 한편 문산천과 갈곡천, 만우천, 공릉천 인근 지역에서 지류하천 잉여수를 활용한 묘대급수를 실시하고 있다.
또 마을이장과 농업인 단체를 대상으로 논물가두기 홍보에 나서는 동시에 집단 못자리 우선 농지에 대해 농업용수 확보에 나설 것을 주문하는 등 단기 대책을 펼치고 있다.
또 단기적인 대책이 지속되는 한해에 대한 대비책으로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 임진강 상류 홍수조절댐인 군남댐과 한탄강댐 등에 대한 담수 확보를 위해 관계기관과 협조에 나서고 있으며, 염도의 영향을 덜 받는 임진강 상류지역에 전진양수장(가칭)을 설치해 만조시 상·하류부의 용수를 희석해 안정적인 용수공급이 가능하도록 예산확보에 나서고 있다.
홍종수 농어촌공사 파주지사장은 “한번 변한 기후 변화는 쉽게 다시 변하지 않기 때문에 파주지역에서는 가뭄 피해에 대한 중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단기대책과 이를 보완할 중장기적인 대책이 함께 운용된다면 앞으로 한해가 발생하더라도 농민들이 받는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규태기자 사진=전형민기자
[인터뷰] 김봉희 한국농어촌공사 파주지사 노조지부장
가뭄과의 전쟁 ‘파김치’ 동료들 희생정신 박수
“매일같이 현장에 투입되는 직원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임무입니다.”
파주 월롱 출신으로 20년 가까운 농어촌공사 재직기간 중 대부분을 고양에서 활동 중인 김봉희 파주지사 노조지부장(43)은 요즘 저수지와 양수장 등에서 활동 중인 동료 직원들의 안전과 피로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말했다.
파주지사는 민통선과 드넓은 지역특성상 관리할 대상이 많아 70여명의 직원 가운데 50여명의 직원들이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교대 근무를 통해 보수 및 유지 관리 업무에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마른 가뭄이 이어지면서 직원들의 피로도는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이 김 지부장의 설명.
김 지부장은 “임진강이 말라가면서 준설선이 직접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는 직원들이 속옷차림으로 삽을 들고 하루 20시간 동안 교대로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면서 “특히 분단이라는 특성상 임진강 인근에는 북측에서 떠밀려온 지뢰 등 위험요소가 많아 작업 환경이 상당히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래도 젊은 직원들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론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래서 직원들이 조금이나마 소통하고 함께 할 수 있는 ‘2030모임’ 등을 만들어 술 한잔 기울이며 피로도 풀고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밴드로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는 등 친밀감을 유지하고 있어 오히려 어려운 상황이 끈끈한 동료애로 발전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흐뭇해했다.
김 지부장은 “나 또한 토목직이라는 특성상 현장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면서 “현장에서 생활하는 직원들의 복지가 조금이라도 좋아질 수 있도록 본사 및 지역본부와 지속적인 협의에 나설 것이며, 어려운 여건에서도 묵묵히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해주는 동료들을 위해 청량제 역할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글=김규태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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