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마이 라이프] 문의갑 한자교사

후손들에 ‘배움의 기쁨’ 선물

“배움이라는 것은 과거를 알아간다는 것인데, 과거를 모르면 미래를 밝힐 수 없습니다.

후손들에 밝은 미래를 선물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이제 늙었으니 후손들이 그 후손들에게 밝은 미래를 선물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겠지요.”

자신의 젊은 날을 군(軍)에 모두 바친 노인(?)이라고는 상상하기 조차 힘든 말을 쏟아낸 문의갑씨(79). 그는 월남 파병까지 다녀와 화약냄새, 삶과 죽음의 냄새를 맡으며 살아온 그는 셀 수 없을 만큼 크고 작은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세월을 이길 수 없었던 그는 군을 떠나야 했고,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다. 잠시 방황도 했지만 가족과 자신이 가르쳐야 하는 아이들이 그에게 제 2의 인생을 열어줬다. 그는 평생을 바친 군을 떠나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전하기 위해 군인이 아닌 교사로 다시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오늘도 자신이 느꼈던 배움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발걸음이 가볍다.

▲ 문의갑씨는 뼛솟까지 군인이다. 1960년부터 28년간 군에 몸을 담으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전역한 지 수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몸에 배인 군기는 지워지지 않는다. 헬기 강하 훈련 중인 문의갑씨 모습

 군인으로서의 삶… ‘뼛속까지 군인’

“안녕하십니까. 문의갑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길 오셨는데 찾는데 어려움은 없으셨습니까?” 문씨는 아직도 대표적 군인 말투인 이른바 ‘다.나.까’를 사용하고 여든이 다 된 나이에도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땐 의자에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아 자세를 흐트리지 않는다.

지난 1960년부터 28년간 군에 몸담으며 젊은 시절을 다 바쳐 바른 자세와 군인정신이 몸에 문신처럼 새겨져 좀처럼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등병으로 101보충대에 입대한 그는 나라를 위해 충성을 맹세했고, 전역이 임박한 시점에서 군에 남기로 결정했다. 안그래도 강직한 성품을 가진 문씨가 군에 남기로 결정하자 일가친척들은 그냥 놔두면 결혼조차 하지 못할 거라 판단했고, 중매에 나섰다.

태권도 공인 4단으로, 군에서 태권도 교관을 맡아 위엄있고 강한 남자라고 불리는 그였지만 연애에는 쑥맥이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4살 차이나는 지금의 부인과 1964년 결혼에 성공했다.

결혼 2년 뒤 한탄강을 건너 우리나라에 침투한 무장공비 때문에 작전에 투입된 문씨는 새벽시간 여명에 비친 무장공비의 모습을 발견하고 집중사격, 2명을 사살했고 인헌 무공훈장을 받는 등 공을 세우며 군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 젊은 시절의 문의갑씨와 가족 사진

그러나 문씨는 자신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 외에도 풍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 활자화 된 모든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길거리에 나뒹구는 신문이나 잡지를 비롯해 손에 잡을 수 있는 글자는 모두 읽어내렸다. 부인이 창피해 하며 나무랐지만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주임상사로 전역하는 그날까지 문씨는 몸과 마음, 지식 습득에 소홀하지 않았다. 어렸을적부터 봐왔던 한자는 한글 읽듯 자연스럽고, 한자에 능한 그는 일본어까지 독학으로 섭렵했다.

문씨는 “그 당시엔 글자만 적혀 있으면 뭐든 읽었다. 활자는 지식이고, 아무리 쓸데 없는 글이라도 받아들이는 자에 따라 배울게 있기 때문이다.”며 “낮에는 몸을 단련하고 밤에는 지식을 쌓느라 쉴 시간이 없었는데, 그게 가족들에게 미안한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교육자로서의 삶… 한문 선생님

“열중쉬엇, 차렷, 공수!, 안녕하세요.” 문씨는 인천 부평구에 있는 ‘행복한 어린이집’에서 일주일에 두차례씩 어린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친다. 어린이 앞이지만 그에게선 군대 냄새가 풍긴다.

자칫 어린이집 원장이나 부모들이 반감을 갖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어린이들의 표정은 그런 걱정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교육은 자발적인 참여도가 매우 높았고 서로 경쟁하듯 더 많이 배우고 싶어 하는 어린이들의 눈동자엔 호기심이 가득했다. 문씨는 어린이들에게 읽는 법과 쓰는 순서 등 하루 2글자씩만 가르친다. 하지만 이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문씨는 평균 4~5시간을 쏟아붓는다.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자주 쓸 수 있는, 그래서 더 쉽게 익힐 수 있는 글자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결정하면 이어지는 단어를 찾아 다음에 배울 글자와 맞춰 단어로 연결시킬 수 있게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 전역 이후 문의갑씨는 지역 어린이집을 찾아다니며 한자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 스스로 공부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문 씨의 인생 2장은 여전히 집필 중이다

문씨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스스로 공부하는 것과는 다르다”면서 “자신이 이해하는 것을 남에게, 특히 어린이들에게 이해시키려면 4~5배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부터 벌써 10년이 다 돼가는 그의 교육자로서의 경력은 이미 다른 교육자가 갖지 못하는 노하우마저 쌓여, 지금 지역 내 어린이집 사이에서는 섭외 1순위다. 특히 문씨는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군인 경력마저 교육에 접목, 아이들은 물론 부모, 어린이집 원장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군인 특유의 바른 자세와 정신, 예절을 교육에 접목해 가정에서 이뤄져야 할 교육마저 충족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어린이집의 한 교사는 “인사 등 예절 교육은 어떤 어린이집이나 가정에서도 이뤄지고 있지만 문 선생님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인사할 때 그 잠깐의 순간 만큼은 진실로 고마움을 담은 인사를 한다”고 전했다.

문씨는 “몸과 마음이 바르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때 만사가 형통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몸에 밴 뻣뻣함을 지울 수는 없었고 오히려 가르치는데 활용해보니 신기한 말투와 자세, 몸짓에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기 시작해 집중력을 높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군인에서 교육자로의 변신

문씨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라’라는 교육철학을 꼽는다. 하지만 문씨의 부모님은 하고싶은 것을 하며 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가르침도 함께 물려주셨다.

여기에다 문씨는 아는 것이 곧 힘이라는 단순 진리를 잊은 적이 없어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를 가훈으로 삼고 자녀들을 교육했다.

어렸을 적 부터 원하는 것을 하며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문씨는 결국 원하는 군에 자신의 평생을 몸담았고, 1남 2녀 자식을 얻고난 뒤 그 교육 철학은 자녀들에게도 이어졌다.

문씨는 자신의 생활 자체로 교육철학을 자녀들에게 물려줬고,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큰 딸은 문씨와 똑같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국내 최고의 대학에 진학·졸업한 뒤 지역아동센터 대표가 되는 등 뜻을 이뤘다. 사슬처럼 이어지는 문씨 부모의 교육철학은 자녀를 통해 돌고 돌아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문씨는 “큰 딸의 권유로 아동센터에서 초등학교 1~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글공부와 한자공부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하게 됐는데, 이것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게 됐다”라며 “배운 만큼, 공부한 만큼 후손들에게 되돌려 줘야 제 인생의 목표에 마침점을 찍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문씨는 이같은 교육철학과 지식, 젊었을 적 다져놓은 강철같은 체력을 바탕으로 생이 다하는 날까지 교육자로서의 삶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는 “배움은 과거를 알아가는 것이고 미래로 이어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며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했으니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능한 교육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글=이인엽기자 사진=장용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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