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정신문화에 답이 있다

1980년대 초 어느 날 이병철 회장이 그룹 연수원인 호암관을 찾았다. 교육 중이라 조용한 복도에서 한 연수생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느린 걸음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며 ‘이 대로 가면 삼성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제2차 석유위기로 국가경제는 마이너스로 급락하고 가전중심의 삼성전자도 몇 년간 신입사원을 채용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에 빠졌던 시기다. 정신을 가다듬고 위기를 극복해야 할 사원들이 연수원에서조차 저런 자세를 보인다는 것은 정신문화에 큰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위기의식으로 사장단부터 워크숍에 들어갔다. 창업정신의 기본으로 되돌아가 삼성정신을 새롭게 정리하고 전 사원 토론을 통하여 삼성정신을 재정립했다. 이 회장은 경기변화에 민감한 가전중심의 삼성전자로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고 메모리반도체 사업에 명운을 걸었다. 첨단 기술산업에의 도전은 삼성정신과 상승효과를 이루며 오늘의 삼성전자의 초석이 되었다.

80년대를 지내며 이건희 회장은 정주영 회장의 ‘해봤나’로 도전과 책임경영을 내세운 현대와 김우중 회장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세계경영을 외치는 대우의 부상으로 나날이 뒤처지는 그룹 위상을 보며 고심을 거듭했다.

이대로 가면 삼류기업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으로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에서 목숨을 걸고 삼성 신경영을 추진했다. ‘관리의 삼성’, ‘양 중심’에서 ‘질 100%’ ‘창의의 삼성’ 조직문화로 바꾸는 68일간의 대장정으로 환골탈태하여 글로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오늘의 삼성은 대를 이은 정신문화리더십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1960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던 한국은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새마을정신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1970년 새마을운동을 시작하여 농경사회문화를 혁신하고 산업화 사회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러나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는 융합과 창조의 시대로 패러다임이 변화하였는데, 우리는 시대에 걸맞은 정신문화를 정립하지 못하여 갈등공화국의 오명으로 3류국가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7년 7월 7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주춧돌을 놓았다. 경제성장이 지속되고 이에 걸맞은 정신문화의 기반을 정립하지 못하면 사상누각이 되어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새마을연수원, 가나안농군학교 등을 통해 전파해온 새마을정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시대적 변화에 대응할 정신문화의 연구와 교육이 시급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설립목적은 한국문화의 정수를 깊이 연구하여 새로운 창조의 기반으로 삼고 주체적 역사관과 건전한 가치관을 정립하며, 미래 한국의 좌표와 그 기본원리를 탐구하여 국민정신교육을 체계적으로 계발·진흥하여 민족문화의 창달 및 기여하는 것이었다.

첫째, 민족문화유산의 발굴 및 계승을 위한 연구, 주체적인 현실인식 및 당면과제 해결을 위한 연구,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미개발 영역 연구, 둘째, 국민정신교육과정 및 교육 자료의 개발, 교육활동의 분석과 평가, 연찬 활동 지원, 셋째, 국제학술 교류 활동 등 넷째, 한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정리하고 보급함으로써 민족문화 창달의 기초를 마련, 다섯째, 장래 한국학과 국민정신교육을 발전시키고 추진해나갈 인재의 양성 등이다.

정신문화연구원 설립 37년, 당초의 설립목적에 충실해왔다면 오늘의 혼란을 극복하고 국민행복의 창조한국을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독수리는 40년이 되면 부리를 부러트리고 발톱과 깃털들을 뽑는 고통을 넘어 새로운 40년을 시작한다고 한다.

새마을정신 45년 우리는 무엇을 바꾸었어야 했는지 깨달아야 한다. 일제 36년과 한국전쟁의 고난을 넘어 새마을 정신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정신문화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통일한국의 꿈이 다가오고 있는데 정신문화의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여 실패한다면 후세에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성공과 실패는 국민들의 태도에 달려있고, 태도는 생각에 달려있고, 생각은 정신문화에 달려있는데 정신문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최고지도자의 몫이다. 정신문화연구원을 설립한 초심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손욱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기술경영솔루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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