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클래식 성악시장

클래식 성악음악의 특징은 접근이 수월하고 깊은 사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 대중음악(가요 혹은 팝)과 달리 감상자가 되기 위해 문학적이고 철학적이며 때로는 종교적인 깊은 사유를 필요로 한다. 클래식음악의 특성 중 하나인 경험재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유아·청소년기 시절에 클래식음악을 많이 듣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70, 8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가곡들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학교 음악시간에도 학생들이 자주 불러 성악음악이라는 기호형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또한 몇몇 성악가는 한 두곡의 가곡을 통하여 스타 성악가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시 등의 문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곡은 치열한 경쟁과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감각적이고 단순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생활주변에서 늘 쏟아져 나오는 대중음악과 달리 일부러 찾지 않는 한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헨델의 <울게 하소서> , 까치니의 <아베마리아> ,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 <보리수> ,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 등은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나 드라마, CF 등을 통해서 들려지게 되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곡이 되었듯이 기호란 자주 접함으로써 형성된다. 한국가곡 중 한 곡도 여기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이 조금 안타깝긴 하다.

오페라는 16세기 말에 탄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18세기 후반~20세기 초반까지 세계 무대공연예술의 꽃으로 황금기를 구가하였다.

근현대적 의미의 극장은 오페라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오페라는 뮤지컬 탄생의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오페라는 이미 오래전 공연예술의 주도권을 뮤지컬에 내주었으며, 뮤지컬은 오늘날 전 세계 공연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장을 이루고 있다.

현대인의 기호에 딱 맞아떨어지는 쉽고 편안한 음악, 화려한 무대장치와 변화, 현실감 있는 스토리, 신나는 춤, 빠른 전개 등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뮤지컬 덕에 오페라는 고리타분한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시장의 큰 흐름을 주도했던 명성악가들의 퇴조와 대체 성악가 부족, 인건비 및 재료비 상승, 뮤지컬 등과의 경쟁으로 성악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오페라 제작여건은 더욱 악화되었다.

간간이 보이는 몇몇 주목할 만한 성악가들에 의해서 세계오페라시장이 움직이고 있지만 성악가는 오랜 기간(10년 이상)의 어려운 훈련과 교육을 통하여 배출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스타일의 좋은 성악가들을 적기(適期)에 배출해내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한국의 오페라 시장은 이전과 비교하면 작품의 편수가 늘었고 품질도 향상되긴 했지만 이미 해외의 세계 정상급 성악가, 오케스트라, 연출자의 작품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경험한 음악애호가들의 높아진 기대수준을 만족시키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음악팬들은 음악을 들으러 가기 보다는 스타 음악가를 만나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다. 스타는 공연을 통하여, 대중매체를 통하여 만들어진다.

한국 성악계의 유일한 스타는 20여 년 동안 오직 조수미 한 사람이다. 성악시장의 활력을 위해서는 더 많은 스타 탄생이 필요하다. 긴 시간을 끌고 갈 수 있는 될성부른 젊은 성악가들에게 우리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언론도 또한 자주 조명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10여 년간 우리나라에 많은 공연장이 지어졌으며, 세계 시장에서도 통하는 좋은 성악가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 이제 이들을 잘 담아내는 우리들의 지혜와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몇 해 전 이태리의 유명 성악선생이 “미래의 세계 성악시장의 중심은 한국이 될 것이다”라고 했던 그 예측의 말이 떠오른다.

박평준 삼육대 음악학과 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