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나눔이… 아이들 꿈의 세계 인도”
종이책보다 스마트폰 화면이 밀접한 시대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다.
하나같이 집게손가락으로 ‘쓱쓱’ 훑으며 ‘킥킥’ 대기 바쁘다. 진리가 책 안에 있다 믿으면서도 누구도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과시의 장식이거나 취업과 승진을 위한 욕망의 도구일 뿐이다.
객관적 책 읽기가 불가능한 시대. 30년 내 사라질 것이라는 암울한 운명이 진단된 ‘종이책’ 분야에 과감히 인생2막을 내건 어르신이 있다.
68세의 나이, 아이들의 책 읽기 전도사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이명상 할아버지. 33년 간 지속된 공무원 생활을 끝내고 ‘책 읽기’를 통해 또 다른 30년을 준비하고 있는 이명상 할아버지를 만났다.
이명상 할아버지의 전직은 공무원이다. 평택농어촌공사에서 정확히 33년 6개월을 일했다.성실했고, 근면했다. 무엇하나 허투루 하는 것이 없었다. 매사에 신중했고, 진지했다. 일도 성격처럼. 평생 일을 달고 살아온 탓일까.
심각히 은퇴를 고민한 적이 없다. 때문에 준비도 없었다. 예견된 수순이었으나 스스로에게는 비현실적인 문제로 여겼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누구도 시간을 통제 할 수 없는 것처럼, 은퇴 역시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2008년 은퇴를 맞았다.
이후 모든 것은 막연했다. 의외의 초연함도 있었다. “어차피 올 것이 온 것인데, 다른 노인들처럼 산으로, 노인정으로 놀러나 다니면서 쉬자”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래서 퇴임 후 3년은 집과 노인정을 오가기만 했어요.”
이명상 할아버지의 기분을 알아챈 것은 둘째 딸이었다. 자격증 준비로 평택 도서관을 오가던 중 우연히 ‘경기도은빛독서나눔이’ 공고문을 보게된 것이 계기가 됐다. 딸은 아버지에게 내용을 알려주며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어울릴 것 같다며.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다.
무엇보다 한번도 생각지 않은 분야의 일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 컸다. 의문도 있었다. “머리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아이들이 좋아할까”라는 의구심. 그런데 한 편에는 묘한 호기심도 들었다. 또래 손주에게 책을 읽어줬을 때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재미난 책을 읽어주며 나 역시 아이들처럼 일상을 즐겁고, 신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신이 들었다. 이것저것 잴 것 없이 일단, 한번 등록해 보자는 생각으로 도서관을 찾았다. 그리고 그 작은 용기가, 노후의 삶을 바꿨다.
2010년 5월, 10주간의 교육이 진행됐다. 제법 같은 생각을 하는 노인이 많았다. 모두 21명의 또래 노인들이 독서나눔이에 지원했다. 일정은 타이트했다. 당시 처음 시행된 사업이라 한 민간 도서업체의 지원을 받아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커리큘럼으로 교육이 진행됐다.
빡빡한 교육 내용을 소화하지 못해 중도 포기한 노인도 있었다. 출석률과 과제제출, 실습 등 다양한 부분에서 평가가 진행했다. 공무원 시절부터 갈고닦은 근면성실함이 교육장에서도 또다시 빛을 발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공부는 이 할아버지에게 도둑질과 같았다.
예습과 복습을 통해 하루하루 배운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 덕분일까. 50%의 합격률로 이 할아버지를 포함해 10명의 어르신이 우선적으로 실무에 배치됐다.
도서관을 거쳐, 지역아동센터로, 어린이집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손주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기도 했다. 교육 때 받은 교재도 버리지 않고, 수십 번 반복해 가며 읽었다.
5년 동안 도서관과 어린이집 등 아이들이 있는 곳을 오가며 읽은 책만도 수천 권에 달했다. 아동서적 중 이 할아버지의 손이 닿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였다. 왜 이제야 이 일을 찾은 게 아쉬울 만큼 독서도우미는 이 할아버지에게 ‘천직’이었다. 인생 2막에 찾은 딱 맞은 ‘배역’이기도 했다.
이 할아버지의 독서 나눔은 개인에만 멈추지 않는다. 2010년 당시 공부했던 동료 어르신과 새롭게 시작하는 독서 나눔이 노인들과 함께 동화구연 모임을 구성해 연말에는 평택 도서관에서 한 차례 동화구연 공연도 가질 예정이다.
이미 몇 차례 공연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서로서로 부족한 부분이나 보완할 부분을 지적해 주며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새로운 콘텐츠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교육 당시 받았던 기억을 되살려, 기존 동화를 필사해 가면서 자신만의 동화책도 만들었다. 그 안에서 정서적인 위안도 받는다.
“동화책이라는 것이 아이들만을 위한 것쯤으로 여기는 데 막상 읽어보면 그렇지 않아요. 그 안에는 어른들이 곱씹어야 할 아이들의 고민이 녹아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교훈, 감동도 많아요.
그만큼 듣는 사람도 읽는 사람에게도 유익한 것이 독서 나눔이 활동인 것 같습니다. 꼭, 은퇴 후 일이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가 다 한번은 할 만한 가치와 보람이 있는 일입니다.”
글=박광수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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