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공허한 역사전쟁에서 벗어나자

홍일표.jpg
국회의원 대다수는 역사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 쉽지 않다.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놓고 벌어진 정치권의 논란을 일각에서는 ‘역사전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과연 지금까지의 역사교과서 발행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역사전쟁’이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역사 교과서가 전쟁터가 되려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전쟁역량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훌륭한 식견을 가진 분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자제의 역량을 발휘해 온 것일 것이다.

 

이것은 다행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296명의 국회의원이 각자 충분한 사료와 독자적인 역사관을 바탕으로 개별사건마다 일일이 교과서의 편찬기준을 제시한다면, 사회적 혼란은 커지고 교과서 제작은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다.

 

정치권의 논쟁이 ‘역사전쟁’이 될 수 없는 다른 이유는 여당과 야당이 각기 다른 곳에서 진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여당은 검인정 교과서 내용상의 좌편향을 지적하고 문제 삼았다. 이 지점에서 발화되었으면 ‘역사전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야당은 국정 교과서라는 발행제도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야당이 검인정 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서 어떠한 입장인지는 지금까지도 불투명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야당의 공격 포인트인 국정교과서에 아직까지 역사가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야당은 국정교과서가 되면,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교과서가 된다고 하지만, 여당은 이를 확실하게 배격하겠다고 밝혀왔다. 이게 ‘역사전쟁’이라면 참으로 공허한 전쟁이다.

 

물론 ‘역사전쟁’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19세기 공화주의자와 카톨릭 교회간의 대립을 시작으로, 좌·우파의 역사해석 충돌과 역사교과서 서술논쟁이 계속 이어져왔다. 미국에서도 1990년대 중반 역사 표준서 논쟁이 있었다. 이러한 ‘역사전쟁’은 총성도 없고, 사망자도 없지만, 좌·우파는 치열하게 싸운다. 그래서 미국, 프랑스 모두 과잉정치화의 비판도 제기되고, 정치인들의 동원전략으로도 보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전쟁’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그동안 우리도 역사를 보는 관점이 좌·우파 간에 큰 괴리가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역사전쟁’은 이것을 통합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전쟁’답게 역사에 대한 논쟁이 벌어져야 한다. 다만, 이 일에 국회의원들이 무슨 도움이 될지는 의문스럽다.

 

이것을 풀어나가는 실마리는 역시 전문가들의 몫이다. 지난 4일 국정 역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로 소개된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의 인터뷰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역사학계의 다수가 집필을 거부한 상황에서 이 노학자의 참여의 변이 궁금했다.

 

최교수는 “국사 교과서를 24년 써 왔다. 교과서 집필에 애정이 있으니까 부탁하든 안 하든 동기는 마련돼 있다”며 “양심껏 쓰는 거다. 지금 교과서는 결론을 내려놓고 연역법적으로 쓴다. 좌우 가리지 말고 사료에 근거해 귀납법적으로 써야 한다. 역사에는 좌우가 없다. 좌에서 보면 우가 보이고, 우에서 보면 좌만 보일 뿐이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녹록한 일은 아닌 것으로 보지만, 국정교과서에는 오랜 경험과 균형 감각을 지닌 더 많은 석학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정부가 이일을 잘해나가야 하고, 여기서 수준 높은 격론을 통해서 거를 것은 거르고, 정리되어야 한다.

 

정치권이 이후 또 다시 ‘역사전쟁’을 벌이게 될지는 1년 안에 밝혀질 국정교과서의 내용과 여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및 전문가들의 평가가 좌우할 것이다. 이때 전쟁은 진짜일 수 있지만, 그때까지는 국회의원들이 제 할 일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본다.

 

홍일표 국회의원(새누리·인천 남갑)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