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미래사회를 위한 대학개혁

(문화카페)배기동 전곡선사박물관장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 위원장.jpg
요즈음 대학이 온통 혼돈의 시대가 접어든 것 것 같다. 정부는 취업률을 높이는 대학을 우선적으로 지원한다고 하니 취업과 거리가 있는 전공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인문사회 전공을 줄이거나 죽이고 공학계열을 늘리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강요받고 있다. 이제 대학 사회에는 인문학이 살아남을 길은 요원하다. 세상, 아니 교육권력자들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학생들의 취업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딸도 예술을 한답시고 취업은 뒷전이지만 열심히 자기를 추구하는 것을 보면 언젠가는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보고 있다. 

비싼 등록금을 대주고도 아직도 아빠의 빨간 속내의 못 사오는 이 딸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험난한 예술가로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에 대견스러움도 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나는 참고 사는데 우리 사회는 참지 못한다. 왜 취직을 못하냐고?!! 어느 사회이건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것은 생명유지의 명제 중의 명제이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기술을 배우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현실적인 교육방안이라는 것은 틀림없고 젊은이들이 취업을 하여 현실경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다.

그런데 그 딴 분야, 밥먹는 것하고 거리가 있는 분야를 좀 한다고 해서 사회에서 구박받는 것은 선진적인 사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기술자만 양성한다고 우리 사회의 미래가 반드시 밝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특히 모든 대학이 천편일율적으로 공학이든 상학이든 간에 기술자의 양성으로 그 교육의 방안을 강요받는 상황은 정말 암울한 미래를 상상하게 만든다. 특히 문화를 연구하는 나에게는 문명의 진보과정에서 기술은 점차로 사람의 손을 해방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는 첨단기술만이 살아남아 적용될 것이고 그 첨단기술은 결국 경제적인 부를 창출하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아서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자동차를 만드는 공장에서 보았던 로봇이 바로 그러한 사실을 보여준다. 

기술은 우리가 먹고 사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미래사회를 기약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기술은 많은 사람들을 종속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교육에 지향하여야 하는 것은 단지 필요한 기술자를 키우는 일만인가? 더구나 우리나라의 최고의 대학들에서 조차 기술을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국가 미래를 위해서 타당한 일일까? 우리나라의 모든 젊은이들을 사이클이 짧은 기술자 대열에 서게 하여야 할까? 기술은 사회의 필수적이고 필연적인 바탕임에는 틀림없지만 국가의 정책이 여기에만 경도되어서는 국가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바로 발명왕 에디슨의 대표적인 명구이다. 새로운 기술의 발명은 사회를 진보하게 만든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철칙이다. 그런데 현실세계의 필요는 이미 늦었다. 필요가 효율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바로 현재가 아니라 미래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필요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역사학이고 역사에서 추론된 철학이다. 그리고 문화의 진화방향을 읽어내는 고고학과 인류학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학문보다 인간의 사유를 자유롭게 만드는 예술이 바로 다양한 미래의 생각과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이러한 분야의 진작이 없다면 기술은 오늘을 사는 데에는 필요하겠지만 미래를 풍요롭게 만들기에는 부족할 것이 틀림없다. 대학교육 조차 모두다 짧은 현실에 너무 경도하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

 

배기동  한양대학교 교수ㆍ국제박물관협회 국가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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