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사라진 까치밥, 신음하는 中企와 소상공인

살끝 에이는 삭풍과 함께 동장군이 오면 항상 생각나는 풍경이 오래된 감나무 끝에 매달린 까치밥이다. 

감과 같은 과실을 따서 갈무리 할 때, 그 녀석들의 먹을 것도 한 두 개 씩 남겨 뒀던 것은 찬바람 불면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힘든 겨우살이가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선조들의 이런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단지 까치밥만은 아니다.

 

지방마다 모습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거의 모든 지방에서 들이나 산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준비해간 음식 중 밥알 같은 것을 던지며 고시레(고수레)라고 외쳤고 이것이 풍년을 부른다고 믿었다.

이는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일하면서도 함께 사는 다른 생명들을 배려할 줄 아는 선조들의 넉넉한 마음의 표현이었고, 당장 자기 배만 채우기 보다는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 결국은 더 잘사는 길이라는 지혜의 실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경제 생태계를 보자. 까치밥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엔 까치밥마저 차지하려는 탐욕만이 횡행하고 있다. 

함께 살고자 하는 상생은 없고, 너를 밟고 내가 살겠다는 적자생존만 있다. 그 정글 속에서 전체기업의 99%,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과 중소자영업자 분들은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눈을 감으면 지난 봄, 본 의원이 주관하여 국회에서 열린 정책엑스포 간담회에서 만난 소상공인들의 절절한 호소가 귀에 쟁쟁하다.

 

“한 알에 백 원도 안 되는 계란까지 글로벌 수출기업임을 강조하는 대기업들이 가져가려 합니다.” “동네 문구점은 영세상인 중에서도 가장 영세한 골목상권의 상징임에도 적합업종 결정이 지지부진합니다.” 국민들의 희생과 세금으로 가능했던 각종 수출 지원 정책으로 엄청나게 덩치가 커진 글로벌 수출 대기업 오너의 2세, 3세들이 더 이상 세계와 경쟁하려 하지 않고 손쉽게 소상공인들의 팔을 꺾고 그나마 남은 까치밥마저 뺏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일 것이다.

 

이에 본 의원은 심혈을 기울여 오랜 연구와 대화 끝에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상생법) 개정안을 마련했고, 그 통과를 위해 노력해 온 것이 2년이 다 되어 간다.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적합업종 관련 사업조정 제도를 활용하는 것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적합업종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중소상인 분들의 ‘실익’을 극대화하여 ‘제대로 된’ 적합업종 제도로 만드는 것이 이 상생법 개정안의 골자이다.

 

위 개정안을 많은 시민단체와 중소상인단체 등이 ‘진짜 민생법안’으로 선정한 것에도 알 수 있듯이 이 제도개선안은 중소기업과 중소상인 살리기 위해 꼭 필요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에 편향된 집권여당과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처리가 무산되고 있다.

특히 본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생법 개정안의 경우는 중소상인 단체의 양해를 얻고, 발의 전 중소기업청의 검토까지 실무적으로 마친 일종의 중재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돌연 입장을 바꿔 거의 모든 사항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정부여당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지키는 까치밥이자 마지막 방파제를 강화시킬 어떠한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중소기업 보호·육성이라는 헌법의 명령을 수행할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진짜 민생을 살리기 위해서는 근조조건을 악화시키는 노동법이나 특정 대기업에게 특혜를 줄 수 있는 원샷법 같은 것이 아니라 이 상생법 개정안을 가장 먼저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중소상공인들의 까치밥을 살리기 위한 정부여당의 태도 변화를 촉구한다.

 

백재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광명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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