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악재로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한국 경제가 북한발 리스크로 또 한번 난관에 부딪쳤다.
북한이 지난달 6일 4차 핵실험을 한 지 한 달여 만인 7일 다시 장거리 로켓(미사일)을 발사하면서 가뜩이나 불안한 대외여건을 한층 더 악화시키고 있다.
미사일을 발사한 날이 일요일인데다, 월요일인 8일부터 수요일인 10일까지 설 연휴로 북한 미사일 발사에 따른 충격파가 당장 국내 금융시장에 전달되지는 않게 됐다.
그동안 반복된 북한발 리스크는 금융시장에 당장 충격을 줬다가는 얼마 가지 않아 회복됐던 ‘학습 효과’ 때문에 국내 금융시장이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사정이 다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2개국(G2) 리스크, 신흥국 불안 및 저유가에 따른 수출 위축, 내수경기 침체 등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불안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북 리스크까지 가중되면 복합적인 요인이 함께 작용하면서 충격이 커지는 이른바 ‘칵테일’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제사회에서 대북 제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이 여파로 개성공단 운영 등 남북경협 사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시장안정대책 마련 총력
정부는 이미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예고됐던 만큼 설 연휴가 끝난 후 금융시장의 동요가 없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를 위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이날 오전 정은보 부위원장 주재로 글로벌 동향 및 금융시장 점검을 위한 긴급회의를 개최했다.
한국은행도 긴급 통화금융대책반 회의를 열어 금융ㆍ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을 점검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최상목 1차관 주재로 금융위, 한은,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경제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휴일과 설 연휴로 국내외 금융시장이 개장하지 않았지만 과거 사례를 볼 때 이번에도 시장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면서도 “연초부터 중국 증시 급락과 유가하락 등으로 국제금융시장이 작은 뉴스 하나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도발과 이를 둘러싼 국제긴장이 고조될 경우 국내외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변동성이 확대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긴장감을 갖고 북한 관련 동향과 경제에 미칠 영향을 모니터링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상징후가 발생하면 신속하고 단호하게 시장안정화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으로는 이미 운영 중인 관계기관 합동 점검반을 통해 국내외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동향에 대한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이미 준비해 놓은 상황별 대응계획을 재점검하고, 국제신용평가사,외국인 투자자, 외신 주요 매체 등에 정확한 정보를 신속히 전달해 시장 심리를 안정화 시키겠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도 10일 이주열 총재가 주재하는 통화금융대책반 회의를 소집해 필요하면 시장안정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강해지는 북한 리스크…‘칵테일 위기’ 현실화되나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악재 속에서 출발한 한국 경제의 향방이 갈수록 오리무중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부는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미국과 세계경제의 성장률 성장을 기반으로 해 마련했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세계경제가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세계경제의 악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칵테일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는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중국의 1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49.4로, 2012년 8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바오치(保七·7%대 성장) 시대에 종언을 고한 중국 경제의 둔화 우려가 갈수록 커지는 모습이다.
세계 경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는 미국의 1월 산업생산, 소매판매, 설비가동률 지표도 부진하게 나왔다. 이 때문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해지고 있다.
중동 정세 불안에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위협 확산, 북한 핵실험 등 세계 주요 지역의 지정학적 위험도 커지는 형국이다.
일본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전격 도입하며 경기 부양에 나선 이후에는 안전자산인 달러화와 엔화마저 연일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北 리스크 영향 제한적이지만 환율상승ㆍ경협 경색 등 불가피”
전문가들은 북한 미사일 발사가 학습 효과 때문에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 경색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충격이 길게 지속되면 국가 신용도에 영향을 주고, 금융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환율도 올라가는 등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학습 효과 때문에 북한발 리스크에 금융시장이 무감각해진 면이 어느 정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오 교수는 북한이 이번에 시험발사한 미사일 성능에 따라 충격이 미치는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오 교수는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남북 관계가 경색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불필요한 부분에 대한 재정 지출을 합리적으로 조
절하고 국방비를 늘리는 방안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국가경영전략에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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