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근무하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은 1979년 설립된 이래 청년창업사관학교를 비롯해 대한민국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정책자금 융자 및 수출마케팅 지원, 컨설팅, 연수사업 등을 수행하는 중소기업 종합지원기관으로서 업무 특성상 많은 기업을 방문하고 있다. 오늘 필자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일전에 졸업기업 CEO와 면담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평소 매우 활력이 넘치는 친구였는데 그날따라 영 기운도 없고 잘 웃지도 않아서 문제가 있음을 직감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너무 잘 되고 있어서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거래처가 늘어나면서 물량도 늘고, 거래처 관리도 필요하고 해서 조직을 확장 중인데 그러다 보니 제품 불량도 약간 늘어나는 등 실수가 잦습니다. 대표로서 이런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개선해나가고자 하는데 창립멤버들이 서운해하는 게 느껴져요. 이런 어색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창립멤버들은 일종의 동지다. 함께 고생하면서 여기까지 이끌어온 공로도 당연히 모두의 몫이다. 문제는 조직이 커가면서 이제는 업무를 분담하고 책임을 나눠 가져가야 하는데 이게 잘 안된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언제까지 친구나 형동생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조직의 위계를 수립하자니 의가 상할까 걱정되고 편하게 지내자니 이게 회사인지 동호회인지 모르겠는 어정쩡한 상황은 비단 이 청년CEO만의 문제는 아니다.
조직을 구성하고 직위를 부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속살이다. 이를테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담당자로서가 아니라 친한 형동생의 관계를 들이대면 꽤나 당황스러울 것이다. ‘겨우 이거 가지고 나한테 이렇게 정색하고 말할 수 있어? 우리같이 고생한 거지 형이 다한 건 아니잖아?’라고 하게 되면 정말 답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논리로 매번 넘어가곤 했는데 그게 너무 힘겹다는 것이다.
필자가 내놓은 해답은 비전을 공유하라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의식으로는 기업이 되어가는 성장통을 이겨내기 쉽지 않다. 언제까지 스타트업이 아니라 이제는 어엿한 기업이 되어야 한다. 기업에 있어서 다음 단계로의 도약은 가슴 설레는 일이면서도 매우 위험한 번지점프 같은 것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도중 겪는 성장통을 이겨내지 못해 사업이 순항 중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인 문제로 주저앉는 기업들을 자주 봐왔다. 권위를 내세우라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기업의 문제를 인간관계만으로 해결하려고 들면 너무나 힘들다. 기업이 존속하는 한 그 세월을 관통할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비전이다.
당신은 CEO다. 종업원 모두에게 모두가 바라보고 뛰어갈 수 있는 빛을 주기 바란다. 그러다 보면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이 아니라 역량을 갖춘 어엿한 기업이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최원우 중소기업진흥공단 청년창업사관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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