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그라나다’의 석류

외교관으로 근무하고 정년을 맞이했다. 외교관은 자신이 주재하는 나라의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직업이다. 사람을 만나야 그쪽의 생각을 알 수 있고 이쪽의 생각을 전하여 서로 소통할 수 있다.

 

현지에서 사람을 만날 때는 2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현지 언어가 되어야 한다. 대화의 수단인 공통 언어가 없으면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이야기 내용(콘텐츠)이 있어야 한다. 때로는 만나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할 말은 간단히 끝 날 경우가 많다. 상대가 듣고 재미있어할 이야기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자면 자연스럽게 그쪽의 문화와 우리 쪽의 문화를 서로 비교하여 공통적인 것을 찾아 화제에 올린다.

 

나는 이러한 경우를 대비하여 평소에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주니어 외교관일 때에는 높은 분들의 면담에 배석하게 되는데 보고용으로 열심히 메모한다.

 

그 경우 모두 나이가 드시고 사회적으로 성공하신 분들이라 업무이외 많은 유머를 섞어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본다. 업무에 관계없다고 한번 듣고 잊어버리기에는 아까운 이야기가 많았다. 나의 메모지에는 그 날 면담에서 오고 간 업무 이야기 이외 에피소드나 유머 그리고 말의 유래 등이 잔뜩 기록되어 있다.

 

‘기억보다 오래가는 것이 기록’이라는 말이 있듯이 기록을 해 두면 언제든지 재생할 수 있다. 앞으로 본 칼럼을 이용하여 그간 기록해 둔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

 

여름이 지났지만 나는 석류꽃을 좋아한다. 석류는 선홍색의 꽃을 피워 만산의 녹색과 대조를 이룬다. 당(唐)나라의 시인 왕안석(王安石)은 석류꽃을 보고 “만록총중홍일점(萬綠總中紅一点)”이라고 읊었다. 많은 남자들 사이의 한사람의 여자 또는 여럿 속에 오직 하나 이채(異彩)를 띄우는 것을 의미하는 홍일점의 유래이다.

 

우리나라의 석류는 중국에서 건너왔다. 중국의 경우에는 한무제(漢武帝)때 서역(중앙아시아)에서 가지고 왔다고 한다. 석류는 자라고 있던 안석국(安石國)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 생김새가 혹 또는 종기(瘤)처럼 보여 처음에는 안석류(安石榴)라고 불렀다가 나중에는 줄여서 석류가 되었다.

 

석류는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사랑을 받았고 그 열매 속에 수많은 씨앗(석류알)이 들어 있어 다산의 식물로 환영받았다.

 

서양에서는 로마시대부터 석류를 포메 그라나테(pome granate) 즉 씨 많은 과일로 불렀다. 중앙아시아가 이슬람 세력 하에 놓이자 석류는 아랍인에 의해 그들의 지배권인 북 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을 거쳐 스페인 남부까지 보급되었다. 스페인 남부를 ‘그라나다(Granada)’라고 부르는 것은 그곳에서 많이 자라는 석류(granate)에서 유래된다고 한다.

 

군(軍)에서 사용되는 소형폭탄 수류탄(hand grenade)도 석류와 관련된다. 그 모양이 석류처럼 생겨 유탄(榴彈 grenade)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손으로 던지는 유탄이라는 의미의 수류탄(手榴彈)이 파생되었다.

 

유주열 前 베이징 총영사 ㈔한중투자교역협회자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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