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여주시 3호 명장 단아 박광천

역동적인 투계와 영묘함 서린 백호, 무궁무진한 우리 강산의 생명력 담는 匠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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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 박광천
입어일획(立於一劃). 붓 한번 놀렸을 뿐인데, 긁개 한번 그었을 뿐인데…. 거칠거칠한 날 것(유약작업 前) 그대로의 백자에 금세 투계판이 벌어졌다.

흥분한 투계가 최후의 일격을 위해 며느리발톱을 세우며 상대를 공격하자, 고요한 가운데 거친 숨소리와 사방팔방으로 난무한 깃털만 무성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름답다.

 

장닭의 건강함과 현장의 역동성이 고스란히 느껴져 절로 손에 땀이 나고 상하 좌우로 배치한 자연물의 조화로움에 금세 시선을 강탈당한다.<투계문호>단아 박광천(朴光千) 명장(여주시 3호·61)의 일획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이다.

 

그를 만나러 가는 날은 지옥같은 폭염을 보내고 바람마저 선선했던 9월1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열린 기획전시, <흙, 불을 만나다> 전시장에서 만난 박명장은 순백의 개량한복 차림으로 물때 묻은 간단한 미술도구 뒤로 무궁무진한 예술작품을 선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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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300℃의 화력을 견뎌야하는 도자를 위해 전통가마에 불을 지피는 박광천 명장의 모습이 노을에 비춰 아름답다 .

초등학생의 남다른 미술사랑…아버지 불호령에도 ‘꿈’ 놓지 않아
“부친은 제 미술적 기질을 밥 벌어먹기 힘든 손재주일뿐이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려 친구들에게 나눠줄 정도로 미술에 흠뻑 빠진 어린 소년은 엄한 꾸중에도 불구하고 꿈을 키웠습니다”

박 명장의 예술에 대한 고집은 그대로 장남 수동씨의 혈관을 타고 흘렀다. 애니메이션 학과를 전공했지만 신세대 도예 작가로서 분한 수동씨는 아버지의 예술혼을 그대로 물려받고 싶다고 털어놨다.

“아버지의 예술적 영감은 아름다운 여주시의 자연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2m가 넘는 날개를 펼치며 야밤출두, 위용을 드러낸 부엉이의 호기로움을 상감철화 접시에 고스란히 담은데다 앙증맞은 새와 나무, 돌, 풀뿌리 하나하나까지 우리 강산의 호기로움과 생명력이 백·청자의 캔버스를 넘나듭니다”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식의 눈매만큼 따뜻한 정경이 있을까. 수동씨는 박 명장에 대한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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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명장이 산수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도자에 표현한 작품 <도담삼봉(嶋潭三峰)>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를 바라보며 설명하고 있다.

“동양화라니요? 철저히 우리 강산, 우리 멋과 기상을 담은 한국화입니다”
문화재화공 164호 인도 이인호 스승의 문하에서 예술세계를 구축한 단아 박 명장의 한국인으로서 긍지는 작품 속에 올곧게 드러난다.

 

백자의 질감과 색을 가감없이 표현, 백호의 영묘함을 드러낸 작품 <상감철화 화장토 백화문 접시>는 이빨을 드러내고 날카롭게 먹잇감을 꿰뚫는 동공의 렌즈를 통해 굴하지 않는 용기와 파워를 심어준다. 부드러운 온화함 또한 엿볼 수 있는데 장끼와 까투리가 청솔가지를 배경으로 소담하게 앉은 작품 <꿩문호>를 비롯 <잉어문호>, <운학문호>, <쏘가리문호>는 부귀와 영화를, 불로장생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십장생문호>, <불로장송문호> 등이 있다.

또한 아들 수동씨와 아이디어 회의 끝에 현대적 기법을 도입한 신세대 도자류도 있다. 스타킹과 라디오 안테나봉 등 현대적 요소를 응요해 도자에 도트(점) 무늬를 찍고 스타킹에 물감을 입혀 포도문양의 탐스러운 열매를 낙관찍듯 찍어낸 <포도문호리병>은 新舊의 밸런스를 갖췄다.

박 명장은 “누가 제 작품을 보고 동양화적인 미를 표현했다고 하면 저는 단칼에 ‘한국화의 미를 그려내고자 했다’고 자릅니다. 동양의 그것이 아닌 우리 고유의 소재와 기법에서 풍기는 혼과 열정을 담았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화가로서 도예인으로서 내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입니다”라고 못박았다.

앞으로도 그의 내 나라, 내 고장에 대한 사랑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를 이어 정신이 이어질 것이며 그래서 더욱 한국의 아름다움은 빛날 것이다.

한편, 박 명장은 ㈔희망연맹 중앙회·3600지구여광로터리클럽 등 봉사단체에 몸 담고 있다. 부인 윤영애씨와 함께 1천300℃ 불길보다 뜨거운 나눔 온도를 높이고 있는 박 명장. 단아 박광천표 인생 역작을 수동씨와 함께 구상하고 있다는 그의 눈빛에서 대가의 깊은 향취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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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명장(왼쪽)이 장남 박수동 도예가와 함께 합작으로 만든 생활다기 등을 들고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단아 박광천은?
여주시 3호 도예명장인 박광천은 여주군 강천면(적금 1리)에서 태어났다. 문화재 화공 164호 인도 이인호 선생의 제자로 사사받았다. 현재 여주 전원도예 연구소(여주시 어영실로 87(천송동))를 운영 중으로 한국예술대제전 금상(1994년) 수상을 필두로 다수의 수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글_권소영기자 사진_오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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