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말 근대초 유럽 귀족은 5단계(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로 구분된다. 젠트리(Gentry)와 요만(Yeoman)은 귀족 아래 계층이다. 젠트리는 귀족은 아니지만 가문의 문장(紋章)을 사용하고 지주계층, 법률가, 의사 등 부유한 중산계급, 즉 부르주아(‘성 안 사람들’의 뜻)를 형성하게 된다. 근대 이후 귀족이 아닌 젠트리가 역사의 주체로 등장했다. 그리고 현재 젠틀맨(Gentleman)의 어원으로 남게 된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이처럼 ‘고상한‘ 의미에서 유래하지만, 도시계획에서는 뜻하지 않은 ‘고급주택(상가)화의 부작용’으로 이해된다.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 Glass)가 1964년 이 개념을 처음 사용할 당시에는 쇠퇴한 구도심이 번창하여 중산층 이상의 고급 주택가로 변화한 현상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후 낙후지역에 대한 개발업자들의 진입으로 토지에 대한 이윤창출의 공간으로 변질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주로 상업지역에서 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기존 낙후된 상업지역의 저렴한 임대료에 이끌린 예술가, 전문가, 중소상인 등이 독특한 개성공간을 연출한다. 이에 매료된 고객들이 몰려들어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지역이 활기가 넘치자 기업형 자본가들이 진출하여 임대료를 높이거나 획일적인 대규모 쇼핑센터를 짓는다.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거나 대규모 상업시설과의 경쟁에서 낙후된 예술가 등은 결국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다. 지역활성화의 주역이 도시재생을 앞세운 자본가에게 자신들의 성과를 내어주고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2009년 홍익대 인근 국수집 ‘두리반’ 철거과정에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이후 강남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경복궁 옆 서촌, 혜화동 대학로, 성수동 서울숲길, 전주 한옥마을 거리, 제주 바오젠거리 등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의 핵심은 상권활성화의 주역과 수혜자가 분리된다는 것이다. 중소상인, 예술인, 전문가들이 독특한 개성과 창의성을 무기로 고객들을 대거 모이게 하지만 그 혜택은 대자본 투자가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으로 헨리 조지 사상이 논의되고 있다. 즉 토지는 개인 부의 원천이 아닌 공동생활의 기초라는 관념에서 대규모 자본의 이윤 동기를 차단하자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이해를 조절하고 기존 창의력을 존중하는 방안으로 현재 국회에는 2개의 입법안이 제출되어 있다.
지난 6월 발의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임대차 보호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임대료인상률을 현행 최고 9%에서 전국 소비자물가변동률의 2배 이하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지난 8월 발의된 ‘자율상권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일정한 요건을 구비할 경우 자율상권구역으로 지정하여 정부, 지자체가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다. 임대차기간도 최장 10년으로 연장된다.
조명현 한국토지주택공사 인천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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