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유학시절 토론의 주제였던 우화가 생각이 난다. 사막에서 갑작스런 폭우로 형성된 작은 삼각주에 미처 피난 못가고 갇힌 전갈과 어린 거북의 이야기이다. 살길이 막막한 전갈이 어린 거북에게 애걸한다. 너는 헤엄을 칠 수 있으니 나를 등에 업고 강을 건너 둘 다 살자는 제안이다. 등위에서 독침으로 공격할 것을 염려한 어린 거북은 당연히 이를 거절하자 전갈이 다시 설명한다.
강 가운데에서 너를 공격하면 우리 둘 다 죽는데 왜 내가 너를 해치겠냐는 것이다. 여기에서 첫 질문은 거북이 전갈을 등에 태워줄 것인가?이고, 다음 질문은 만약 등에 태워주면 전갈이 거북의 목에 독침을 꽂을 것인가?이다. 일종의 사고실험이었는데 두 가지 사실이 추론되었다.
첫째는 상호 신뢰가 없이는 등에 태워주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전갈의 속성상 등에 타는 선의(善意)의 기회를 얻는다 하더라도 독침을 사용하고 본다는 것이다. 정치권력 싸움에서 신뢰란 얻기도 지켜지기도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게임이론의 모형인 ‘죄수의 딜레마’ 역시 신뢰문제를 잘 보여준다. 공범(共犯)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각각 격리되어 수사를 받는 상황을 가정한다. 이모형은 두 사람이 서로 신뢰하여 협조하면 모두 큰 이익을 얻고, 불신으로 서로 협조하지 않으면 둘 다 큰 손해를 본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여기에서 제기되는 요지는 자신은 신의를 지켰는데 상대가 배신했을 경우, 저 혼자만 크게 손해 볼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결코 협조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최선의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우왕좌왕 벌어지는 권력의 주도권싸움 역시 이와 크게 다름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그들만의 승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국적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TV에서 고릴라가 어린 사자들을 자기 새끼처럼 품에 안고 키우는 장면을 보곤 한다. 이는 종(種)을 국경으로 삼지 않는 삶의 모습이다. 악어새는 자신의 새끼도 잡아먹는다는 흉측한 악어의 입속에서도 먹이를 쪼아 먹고 살아간다. 이는 상생의 원리일 것이다. 성경에서는 사자가 새끼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며, 젓 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치며 사는 세상을 예언하고 있다. 이는 집단을 가르지 말고 상호간의 신뢰와 타협을 통해 평화를 이루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거대한 촛불의 물결이 서울 시내 한복판을 휩쓸고 있다. 다행히도 질서 있는 외침에 외신마저도 성숙한 시위문화에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위기가 곧 기회일 수 있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작금의 역사적 사명을 무섭게 받아들이고 살신성인의 자세로 용담(勇膽)있는 정치력을 창출해야 한다.
이백철 경기대학교 교정보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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