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힘찬 새해의 기운을 받고자 전국 명소에는 사람들로 붐볐고 가족, 연인들은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내일의 건강과 안녕, 사랑, 소원성취를 빌었다. 하지만, 당장 오늘을 위해 소원을 비는 이들이 있다. 바로 위기가정의 엄마, 아빠 그리고 자녀들이다.
지난해 남동구에 사는 참 밝은 아이를 만났다. 10만 명 중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희귀병에 걸려 위중한 상태였지만 말과 태도에서 희망과 꿈이 느껴졌다. 2년 전 겨울, 학교에서 쓰러져 급히 응급실로 옮겨지고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몸속에 골반, 척추, 간으로 암덩어리가 이미 퍼졌다고 한다.
담당의사는 살날을 기약하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했다. 이때 그 아이의 나이는 9살에 불과했다.
치료를 시작하던 그해. 간을 절제해야만 했고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을 해야 했지만 입·퇴원비를 아끼기 위해 아이 엄마는 버스로 4시간 거리를 등에 업고 병원 오가기를 매일같이 반복한다고 했다. 끝없는 치료비는 평범했던 가정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밖에 없었다.
아이 아빠는 지방 공사장에서 용접일을 하면서 병원비를 보탰지만 한동안 일이 없어 2천만원을 대출받아 병원비를 메우면서 생활했다고 했다. 아이는 본인이 아파서 빚을 지는 것도, 얼마나 심각한 병인지도 알고 있지만, 반드시 나을 거란 희망을 갖고 낫고 나면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이 돼서 엄마와 아빠를 태우고 여행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도 장담하기 힘든데 장래를 생각한다는 게 너무나도 대견했다. 너무나 밝은 모습에 어떻게든 돕고 싶어서 이 사연을 최대한 세상에 알렸다. 다행히 기부금이 모여 조금이나마 의료비 부담을 줄여줄 수 있었다.
위기가정이란 갑작스러운 위기사유(질병, 실직, 배우자 사망 등)로 한순간 평화로웠던 가정이 위기로 내몰린 것을 말한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위기에 대해 잘 대처해 나간다면 다시금 새로운 희망을 얻을 수 있고, 같은 크기의 희망이라도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가정을 말하는 것이리라.
이들도 위기 이전에 남들처럼 더 잘 살고 싶어 했고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길 바랐고 우리와 같은 꿈과 희망을 바랐다. 하지만 위기 이후 이들은 오늘 당장 아이를 살려야만 했고, 내 아이가 굶지 않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시민분들이 보내준 기부금은 행정기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위기가정에게 삶의 희망으로 전달되었고 벌써 5년째 접어든 적십자 희망풍차 사업(위기가정 긴급지원 사업)은 연간 13만명의 이웃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생사의 기로에 놓인 가정을 도우면서 시민의 관심과 사랑에 항상 고맙고 감사했다. 정유년에는 절망의 순간에서도 위기가정이 내일의 꿈과 희망을 꿀 수 있도록 힘찬 새해의 기운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황규철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시지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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