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조국이 우리를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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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위한 고귀한 희생을 대하는 미국의 자세를 여실히 그려낸 영화 ‘챈스 일병의 귀환’은 실화를 토대로 제작되어 2010년 현충일에 우리나라 TV에서도 방영되었다. 영화는 2004년 이라크에서 전사한 미 해병대 챈스 펠프스 일병의 유해를 이라크에서 미국 도버 공군기지를 거쳐 그의 고향마을까지 운구하는 여정을 담담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펼쳐낸다.

챈스 일병이 귀향해 영면에 드는 과정의 단조로운 구성이 묵직한 감동을 주는 이유는 하나다. 경의와 예우, 바로 그것이다. 비행기 안과 공항에서, 고속도로 위에서, 그리고 시골 동네의 좁은 길목마다, 챈스 일병이 만나는 국가시스템과 국민들은 나라를 위해 산화한 희생 앞에 최상의 정중과 엄숙한 존경을 표하고 있었다.

 

챈스 일병이 전사했던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과 미국의 자국우월주의에 관한 논란은 차치하자. 다인종·다국적·다문화라는 분열의 불씨를 안고서도 세계 최강대국으로서의 위치를 굳게 지키고 있는 한 나라의 힘을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챈스 일병만이 아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군인 단 한 명의 유해를 찾고자 엄청난 비용으로 한강 밑바닥을 수백 번 탐사하는 정성에서, 실종 40년 만에 발견한 군번표를 단서로 10년간 기록을 추적하여 결국 조종사의 유해를 찾아내는 집념에서, 우리는 미국의 그 ‘힘’을 분명히 마주하게 된다. ‘보훈(報勳)’이다.

 

보훈은 국가가 유공자의 애국정신과 훈공에 대한 보답을 하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의 보훈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개인에 대한 것으로 국한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도 전쟁 위험 속 분단대치상황에 처해 있는 대한민국에서 그 의미는 단지 한 ‘개인’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한 나라의 정체성과 안보를 지탱하는 뿌리인 보훈은 그 본질이 ‘대상’이 아닌 ‘근본정신’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를 위한 특별한 희생은 비단 한 개인만이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정한 집단 혹은 특정한 지역의 단위에서 그 기여의 취지가 반추되어야만 한다.

 

미2사단, 안보요충지, 군사도시, 도시 면적의 42%가 미군공여지, 북한의 장사정포에 맞서는 제210화력여단의 막강한 화력, 제대로 된 산업발전을 겪지 못함, 주한미군 의존의 기형적 산업구조, 주둔미군 병력감소로 인한 도시쇠퇴와 경기불황, 재정자립도 최하위.

 

인터넷에서 동두천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설명들이다. 국가를 위한 기여와 헌신을 다른 어떤 단어들로 대체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무엇으로 동두천이 겪어야 했던 65년간의 희생을 묘사할 수 있을까. 이 나라를 지키는 굳건한 힘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지난 몇 달 간 많은 혼란과 분열을 겪었던 대한민국이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내고 상처를 치유할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봄이다. 후보들 각자의 정치적 철학과 신념은 다를지라도 자유대한민국을 튼튼한 안보로 굳게 지켜갈 호국정신은 모두가 한마음일 것이다. 

‘대한민국호’를 이끌고자 하는 예비선장인 대선후보들께 10만 동두천시민의 하나된 목소리를 전한다. 보훈은 국민통합의 대전제이자 한 국가의 존립기반임을. 국가안보와 국민안전을 위해 오랫동안 묵묵히 희생해 온 지역은 ‘보상’이 아닌 ‘보훈’의 대상임을. 그리고 동두천은 진정 다음 한마디를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조국은 결코 당신을 잊지 않는다.(You are not forgotten.)’

 

장영미 동두천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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