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 대학의 그래함 앨리슨 교수는 사례연구를 통해 지난 500년간 역사에서 대부분의 패권교대가 전쟁을 통해 이루어져 왔음에 착안,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s Trap)’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앨리슨 교수는 오늘날 미중관계를 떠오르는 중국(rising China)과 패권국 미국(reigning America)과의 관계로 보고 두 나라가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중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미국의 문제를 지적했다.
중국은 화평굴기(peaceful rise)라는 표현을 쓰면서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를 통해 가급적 아시아를 하나로 연결하고 미국을 아시아로부터 밀어내려고 한다. 이는 과거 중국과 아시아 이웃 간의 천하개념(天下槪念 천하의 모두는 황제의 것)을 연상시킨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미중관계를 보면 양국은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지지 않고 패권교대가 가능할지 모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일본 등 태평양 연안 11개국과 맺기로 약속한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 탈퇴를 선언했고, 최근에는 세계의 195개국이 참여한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TPP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다자 자유무역(FTA) 기구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으로 볼 때 ‘미국 우선주의 (American First)’를 내세워 그 간 미국이 추구해 온 글로벌 리더십, 즉 패권을 포기하고 국내 지지층의 이익에 매진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의 대통령’보다 ‘미국의 대통령’을 선택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적인 행동에 분노한 독일의 메르켈 수상은 ‘미국에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 유럽인의 운명은 우리 손으로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빠져나간 글로벌 리더십의 공백을 조심스럽게 채우기 시작했다. 중국은 미국의 TPP 탈퇴에 따라 당황해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에게 RCEP로 손을 내밀고 있으며 파리기후협약 탈퇴로 분노하는 세계를 달래고 있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글로벌 리더십 승계라는 ‘최고의 선물’을 받은 셈이다.
아직도 미중 간의 국력의 격차는 크다. 지금 당장 미중 간에 글로벌 리더십의 교대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마이웨이가 계속되고 중국이 인권 등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지키면서 대외적으로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칼날을 감추고 어둠에서 힘을 기름)의 정신으로 때를 기다린다면 ‘투키디데스 함정’을 피하고도 글로벌 리더십을 획득할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유주열 前 베이징 총영사·㈔한중투자교역협회자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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