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시 ‘서양의 진수를 알려고 하면 영국으로 가고 동양을 알려면 중국으로 가라. 그러나 동서양을 동시에 만나는 곳은 바로 홍콩’이라면서 홍콩의 인기는 높았다.
홍콩을 이루고 있는 것은 홍콩섬과 주룽(九龍)반도 그리고 신계(新界(주)New Territory)다. 홍콩섬과 주룽반도는 19세기 중반 제1, 2차 아편전쟁의 전리품으로 중국(淸)으로부터 할양받아 사실상 영국의 영토가 됐지만 신계는 다르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일본에 패배하자 영국은 홍콩섬과 주룽반도를 지키기 위해 주변의 신계가 필요했다.
1898년 영국은 중국에 압력을 넣어 홍콩섬과 주룽반도의 6배가 되는 신계를 99년간 조차했다. 영국으로서는 영구 조차의 효과를 기대하였는지 모르지만 세월은 흘러 99년이 되는 1997년이 다가왔다.
영국의 대처 수상은 조차 연장을 요청해 놓고 중국이 쉽게 응하리라 판단했다. 그러나 당시 집권자 덩샤오핑(鄧小平)은 달랐다. 신계의 조차 연장은커녕 홍콩섬과 주롱반도도 불평등 조약으로 빼앗은 것이니 반환하라고 주장하였다.
덩샤오핑은 홍콩섬과 주룽반도를 돌려주지 않으면 신계에서 홍콩 쪽으로 가는 수도관이며 전력 등을 모두 끊겠다고 얼음장까지 놓는 한편 ‘일국양제(一國兩制 One country, Two systems)’라는 절묘한 해결 방안을 내놓고 영국을 설득했다.
1984년 홍콩반환협정이 발표됐다. 신계를 포함 영국령인 홍콩섬과 주롱반도를 모두 중국에 반환하고 그 대신 홍콩은 ‘홍콩인 통치(港人治港)’를 원칙으로 현재의 시스템을 2047년까지 50년간 유지하는 홍콩 기본법을 제정하기로 합의했다.
1997년 6월30일 밤 영국을 대표하는 찰스 왕세자는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에게 주권을 반환(hand over)하고 크리스 패튼 총독과 함께 왕실 전용 요트를 타고 홍콩을 떠났다. 7월 1일 0시를 기해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트럭을 나누어 타고 홍콩으로 진입했다. 그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영국 식민통치 치욕을 씻어주는 비라고 했다.
1841년 아편전쟁 당시 영국인이 홍콩섬을 점령하자 그곳에 살던 주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영국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홍콩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대륙으로 탈출할 것인가의 고민을 했다고 한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1997년에도 홍콩 주민들은 비슷한 고민을 했다. 일부 홍콩인들이 캐나다 밴쿠버로 대거 탈출(이민)을 한 것도 그러한 고민의 결과였을 것이다.
올해 7월로 홍콩의 주권반환 20주년이 된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홍콩을 찾았다.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홍콩은 완전히 반환돼 중국의 일부가 된다. 수도 베이징에서 보면 남동쪽의 상하이, 남서쪽의 홍콩을 중심으로 창장(長江)과 주장(珠江)을 끼고 두 마리의 용이 중국 경제를 끌고 가는 모습이 된다.
홍콩에서 멀지 않은 남중국해가 영유권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다. 홍콩은 경제뿐만이 아니고 중국의 안보 면에서도 중요한 거점이 되고 있다.
유주열 前 베이징 총영사·㈔한중투자교역협회자문대사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