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없는 이산 상봉] 멀기만 한 고향땅, 앞으로 과제는

‘고령’ 이산가족들 힘겨운 기다림… “더 이상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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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전쟁을 직접 겪으며 고향을 잃거나 혈육과 흩어져 소식도 모른 채 살아온 이산가족 1세대 생존자들에게는 가족을 만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적십자 이산가족 사업을 통해 가족을 찾을 수 있었던 사람은 2만여 명이며, 5만 7천여 명의 생사가 확인됐다. 그러나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망한 인원도 7만여 명에 달한다. 

가족상봉 주선을 요청한 13만 명 중 이미 절반을 넘긴 수치다.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 대북제재 국면 속 이산가족상봉 추진 ‘가시밭길’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 관계 기조는 화해와 협력 정책을 편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이어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산가족 전원 상봉을 추진하겠다는 대선공약을 내놓는 등 이산가족상봉 추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두 차례 ‘ICBM급 미사일’ 발사로 이미 고조된 군사적 긴장을 일시에 낮추고 남북이 얼굴을 맞대기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특히 8월 중순쯤 시작될 예정인 한미연합훈련을 핑계로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지난달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 논의를 위해 북에 적십자회담 제안을 했지만, 결국 무산되고야 말았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우리가 8월1일 열자고 북한에 제안한 적십자회담에 대해 북한의 반응이 없는 상태”라며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책임 있는 당사자로서 인내심과 끈기를 가지고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와 안정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에 대한 정부 의지는 확고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문 대통령은 “오는 10월4일 추석 및 10·4선언 10주년을 맞아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진행하자”고 발언한 바 있다.

 

■ 이산가족상봉의 한계

이렇듯 북한의 비협조 또는 전반적인 남북관계의 경색이나 긴장 고조로 남북 이산가족상봉은 늘 어려움에 직면해 왔다. 이는 북한이 남북 이산가족상봉 사업을 전략적 대남협상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사업의 추진 시기가 일정하지 않고, 때로는 합의된 일정이 중단되거나 장기간 재개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와 함께 이념적 갈등의 소지가 적을 것으로 기대했던 이산가족문제 논의에 정치적 또는 이념적 요소가 개입해 장애를 줄 때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70년대 북한은 이산가족 사업을 심리전이나 정치선전 차원에서 제기하면서 회담진전에 장애를 줘 회담에 어려움을 끼쳤다. 

2000년 이후에는 과거에 비해 정치적 요소나 이념 갈등 문제가 쟁점으로 대두되는 일이 드물었지만, 수령 절대 지배 체제하의 북한체제 특성상 회담이나 상봉 행사의 진행 자체를 어렵게 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했다. 아직도 남북적십자사 차원에서 회담이나 행사를 진행하면서 정치나 이념 문제로 북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아울러 이산가족 규모에 비해 상봉 행사 규모와 빈도가 너무 낮으며, 이로 인해 가족찾기에 걸리는 시간과 노력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5년 10월 상봉 행사의 경우 상봉 대상자로 선정될 확률이 무려 622대1이었다. 1년에 최대한 진행할 수 있는 상봉 횟수가 6회라고 가정해도 대한적십자사에 신청한 이산가족들의 상봉이 모두 이뤄지려면 100년 이상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 풀어야 할 숙제는

남과 북이 분단의 장벽을 넘어 추진한 남북 이산가족 찾기 사업을 시작한 지 어느덧 60여 년. 성과도 많았지만 아쉬움이 더 컸다. 이산가족상봉을 위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우선 남북 이산가족 사업은 남북관계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돼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 이산가족의 전면적인 생사확인 작업이 조속히 실행돼야 한다. 나아가 남북 이산가족상봉의 규모와 빈도를 가능한 한 조속히 확대해야 한다. 이산가족 전체에 대한 전면적 생사확인 작업이 선행된다면 더 빠르고 더욱 큰 규모로 이산가족상봉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이산가족상봉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힘은 남북의 전체 민족 지지와 관심에 달려 있는 만큼 국민들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권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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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임재천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국제사회 대북 제재 속 상봉 추진은 무리”

“현 정부의 남북적십자회담 제의는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북한이 대화의 제스처를 취해 와야 이산가족 상봉의 명분이 생깁니다”

 

임재천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대화와 압박의 병행이지만, 동맹국인 미국의 입장은 다르다. 대북압박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강경책을 취하고 있다”라며 “미국과 북한의 강 대 강 구도 속에 우리 정부가 아무리 우호적인 입장을 내세운다 해도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7ㆍ6 베를린 구상과 남측의 대화 제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군사행동을 지속하고 있다”라며 “북한은 대내외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 최대 목표로 핵개발이 우선이지, 이산가족상봉 사업은 추후의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판국에서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은 다소 아쉽다고 지적한 뒤 “북한이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면 대화 신호를 보낼 것”이라며 “그때야 남북관계가 안갯속을 헤쳐나와 끝에 벼랑이 있는지 다리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국면에서 당장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추진하는 것은 무리다”고 조언했다. 

권혁준기자

 

이산가족 76% ‘생사 확인’ 가장 시급

지난해 통일부가 실시한 ‘2016년 이산가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산가족들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히 추진돼야 할 정책으로 ‘전면적인 생사 확인’(76.3%)을 꼽았다.

 

이어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10.3%), 남북간 서신교환 제도 마련(4.0%), 정부차원의 전화통화 제도 도입 및 활성화(2.9%), 명절 정기적인 고향 방문 추진(2.6%) 등의 순이었다.

 

이번 조사는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 5만 1천174명 중 표본으로 선정된 6천142명에 대해 이산가족 교류 실체 및 정책 인식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실시됐다.

 

또한 이산가족들은 ‘이산가족의 기록물 수집 및 보존’(39.5%), ‘이산가족 관련 문화예술 보급’(19.2%), ‘이산가족 위로 행사 확대’(14.6%) 등의 응답을 보여 정부가 이산가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국민적 관심을 모아주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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