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생태계와 빅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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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를 펼쳐놓으면 부러운 심리가 작용한 것인지 국토 면적이 넓은 나라들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09번째로 면적이 넓은 나라다. 면적에 비해 많은 인구로 인해 평생을 와글와글, 보글보글, 언제나 복닥거리지만, 우리와 평생을 공존해야 할 생명체들이 정말 많다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산이나 들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에 나무가 몇 개(몇 그루)나 있어요? 나뭇잎은 몇 장이나 있어요? 개미는 몇 마리나 돼요?” 등이다. 참 간단하지만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신이라 해도 답을 선뜻 내밀어 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재미있게도 정부기관에서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나무의 숫자가 적어도 3천억 그루 이상일 것이라는 추정치를 발표한 적이 있다. 하루에 1억 그루씩 나무 숫자를 일일이 세어본다 해도 3천일하고도 8개월이 더 걸리는 숫자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럼, 이 나무들은 몇 장의 잎을 만들까? 1그루당 1천 장씩? 3천 장씩? 1만 장씩? 물론 어느 숫자가 대표적이라고 추정할 근거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나무 한 그루에 1천 장의 잎은 달릴 수 있다고 가정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간단한 실험을 해 보자. 우연히 맨땅 위에 떨어진 낙엽을 발견한 여러분은 그 낙엽 위에 콩알만 한 작은 돌을 하나 올려두고 밤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아보자. 여러분이 하실 일은 단잠을 자고 일어나 다음날 낙엽을 찾아가서 살피기만 하면 된다. 콩알만 한 돌을 들어내고 낙엽을 뒤집어 보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아마 나뭇잎 뒤편에 맑디맑은 물이 방울방울 가득 맺혀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한 장의 잎에 약 0.3㎖의 물이 매달려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도 따스한 계절에는 거의 매일, 그 시간은 연중 절반쯤으로 가정한다. 그리고 궁금증을 첨가해 보자. “이 물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그리고 이 물방울들은 깨끗한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낙엽 뒷면에 달라붙은 물방울은 지표면에서 증발한 물방울로서 증류수나 다름없이 깨끗한 순수한 물 입자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만일 3천억 그루의 나무에 달린 1천 장씩의 모든 나뭇잎이 이렇게 깨끗한 물을 만드는 일에 가담한다면 도대체 하루에 얼마나 많은 깨끗한 물을 생산하는 것일까? 한 번 계산이라도 해보자.

 

3천억 그루의 나무 × 1천 장의 잎 × 0.3㎖ × 180일 = 1.62 × 10㎖에 0이 17개나 더 붙는 숫자가 된다. 이것을 1리터짜리 물병에 넣는다면 162조 병이고, 1톤 트럭에 옮겨 싣는다면? 1천600억 대분량이다. 실로 엄청난 양이다.

 

우리가 그냥 흘려보내듯 바라보기만 했던 나무의 잎이 만드는 환경 부가가치. 지구 표면을 덮고 있는 나무들은 그 오랜 시간 동안 단 하루도 이런 일을 쉰 적이 없다. 참으로 놀랍고 고마운 존재들이지만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말 한 번 던진 적 없던 우리들이 아닌가.

 

작은 기부금으로도 몇 장의 옷가지와 땔감을 전달해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동하고 즐거워하며 행복의 크기를 늘려나간다. 그 감동의 장에 단 한 번도 초대받지 못한 위대한 생태계의 생산자들, 숲과 들과 건물과 도로를 지나면서 만나는 나무들이 해 온 일이다.

 

산과 들을 만나면 ‘야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박수를 먼저 보내자. 오늘 우리가 알아본 생태학적 빅데이터의 가치를 이해했다면 말이다.

 

박병권 한국도시생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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