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집권세력의 고정관념, 안보위기 심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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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서양 역사에 위대한 탐험가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냉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영국 총리를 지낸 보수당의 윈스턴 처칠은 노동당을 누가 세웠는지를 놓고 주변에서 논란을 벌이자 “창설자는 콜럼버스”라며 참견했다. 그러면서 “콜럼버스는 출발할 때 어디로 가는지 몰랐고, (신대륙에) 도착하고서도 어딘지 몰랐다”고 했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네 번이나 탐험했는데도 처칠의 말대로 그곳이 어디인지 몰랐다. 인도 서쪽일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반면 후발주자였던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신대륙을 살피고 나서 ‘미지의 신세계’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어떤 선입견도 배제한 채 냉철하게 판단했던 것이다. 그 결과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신대륙에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새길 수 있었다. 콜럼버스가 고정관념을 버렸다면 신대륙엔 그의 이름이 붙었을 것이고, 처칠도 노동당을 조롱할 때 그를 들먹이지 않았을 것이다.

 

출범 4개월이 지난 문재인 정부를 보면서 콜럼버스를 떠올린 건 집권세력의 고정관념도 보통이 아닌 것 같아서다. 우리가 직면한 안보 위기는 ‘역대급’이다. 북한은 대량살상무기의 모든 체계를 갖추게 됐다. 수소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정부가 분석하는 대로 북한이 아직 완벽하게 만들진 못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그걸 완성하는 건 시간문제다.

 

북핵은 한반도 안보 지형과 역학을 완전히 바꿔놓은 ‘게임 체인저’가 되어 버렸다. 물론 정부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을 가다듬고 있다. 대북 대화보다는 제재에 무게를 싣기 시작했고, 집권 전엔 반대했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임시로라도 배치한 것은 잘한 일이다. 북한의 공격에 대비한 3축 체계(선제타격의 킬 체인, 미사일방어체계, 대량응징보복) 구축을 서두르기로 한 것도 옳은 판단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안보를 담보할 수 없다. 북한의 가공할 비대칭 전력에 맞서 우리를 지키려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대비를 해야 한다. 고정관념에 얽매여서는 그런 대비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정부가 보이는 태도는 답답할 정도로 완고하다.

 

미국 전술핵을 들여와 ‘최소한의 핵균형’을 이루자는 주장에 국민 전체는 물론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찬성여론이 더 높게 나오지만 대통령부터 “안 된다”며 간단하게 묵살해 버린다. ‘전술핵을 도입하면 북한에 비핵화 원칙을 들이밀 수 없다’는 논리에서다. 

이런 관념에 빠져서 비대칭 전력의 차이를 상쇄할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하지 못하는 집권세력을 보면서 북한은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이다. 정부가 전술핵 재배치를 북한 핵 포기용 압박카드나 도발 억지용 카드로 쓰지 않고 처음부터 선택지에서 배제해 버린다면 북한은 안심하고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할 것이다.

 

여권에선 “북한 핵무기는 미국을 의식한 자위적인 것이며, 남한 침략용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김정은이 얼마 전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하라”고 했는데도, 여권 인사들은 태연하다. 이들은 북한 정권의 선의를 믿는 것 같다. 대화를 하면 다 잘 풀릴 걸로 믿는 것 같다.

하지만 북이 진실로 선의를 보인 적이 있는가? 위장된 선의로, 대화 제스처로 각종 지원을 받아내고, 그걸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다 들통이 나면 모든 약속과 협정을 파기했던 그들 아닌가. 남한 적화통일도 공언해 온 그들 아닌가. 북한의 이런 본질을 집권세력이 외면하고 고정관념의 환상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위기는 한층 심화할 것이다.

 

이상일 가톨릭대 초빙교수·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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