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노후의 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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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란 스트레스 해소나 피로회복 등 산업사회의 생산력 회복을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당연한 법적 권리다. 그러니까 인권과 기본권에 대한 존중과 여가에 대한 존중은 궤를 같이 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사람이라면 무조건 존중부터 하고 보아야 한다는 인권의식이 부족할수록 여가는 그저 생산력 회복을 위한 수단에 가까운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우리 사회는 유난히 부지런함, 근면을 강조한다. 그래서 노동자라고 해도 될 것을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란 의미의 근로자란 말이 굳어질 정도다. 올 추석에는 연휴와 대체휴일에 임시공휴일까지 더해져 열흘이란 ‘황금연휴’를 누렸다. 시작 전부터 ‘생산 감소’, ‘수출 둔화’를 한쪽으로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내수경기 진작’ 또는 ‘소비 회복세 개선’ 등이 임시공휴일 찬반의 논거로 제시됐다. 여가는 아직 수단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셈이고, 마땅한 권리 차원에서 접근하는 시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어르신들 여가는 어떨까? 노후가 길어졌기에 여가활동은 노후 삶의 질에 결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후의 여가가 그렇게 중요한 영역으로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의를 기울여 둘러보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조용히 앉아서 홀로 시간과 싸우는 어르신들이 적잖이 보인다. 거꾸로 소리소리 지르면서 노익장을 과시하려는 분들도 있고, 그늘막이나 양지를 찾아 화투를 치는 분들도 보인다. 물론 경로당과 노인복지관에서 유익하게 보내는 분들도 적지는 않다. 그럼에도 노후의 여가가 지닌 의미의 무게만큼 정책 차원에서나 개인 차원에서 공을 들이는 모습은 아쉽다.

 

노후 여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또는 노후 여가의 근본 토대라면 아무래도 노후소득이다. 여기에는 결국 연금이 중요하다. 연금을 납부해야 했던 시간에는 잘도 통장에서 꼬박꼬박 알아서 받아 갔는데 줄 때가 돼서는 신고를 해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아무래도 행정편의주의다. 부정수급이나 어떤 다른 문제 때문일 수도 있겠고, 또 고지 의무화나 기간 연장 등의 노력도 보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받아야 할 분들을 찾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하다.

 

역시 여가, 특히 노후 여가는 이런 기본적인 제도와 행정의 자세와 연결된다. 그리고 그런 문화가 교육과 언론 및 여론을 통해 개인들의 의식과 사고에 파고들게 된다는 점에서 변화가 더디고 힘들다. 앞서 보았듯 아직도 여전한 휴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결국 그동안 우리 사회와 문화에 확고히 자리 잡았고, 그것은 우리 세대 이상의 사람들 책임이 크다.

노동만 중요한 게 아니라 여가도 중요하고, 성장만 중요한 게 아니라 복지와 분배도 중요하다는 걸 우리는 한편으로는 억지로 떠밀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길들어버린 나머지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온 것이다. 그 결과 여가생활을 아예 모른 채 노후를 맞은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상한 무력감이나 피로감과 지루함에 빠져 힘겹게 시간을 퍼낼 수밖에 없다.

 

우리 휴일은 유럽은 물론 아시아권에서 보더라도 매우 적다. 앞으로 8년 뒤에나 이번처럼 긴 휴일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소득균형을 비롯해 걸리지 않는 것이 없겠지만, 우선 여가에 대한 인식 변화조차 없다면 앞으로도 노후 여가는 축복보다 저주로 작용하기 쉽다. 그러기에 우리 생각과 행동부터 먼저 바뀌어야 한다.

 

김근홍 강남대학교 교수·한국노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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