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나라를 지키기 위한 역사의식과 유비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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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국방위원장을 하다 보면 외국에서 손님들이 많이 찾아온다. 최근 몇 달 동안에 그 숫자가 부쩍 늘었다. 미국의 의원들은 물론 유럽의 나토회원국 국회의원들, 언론인들이 많다. 이들이 나를 찾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한반도의 안보상황이 궁금해서다.

북한 김정은의 ‘핵보유국이라는 욕망의 열차’가 이제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다. 이 열차에서 어떤 괴물들이 쏟아져 나올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 국민의 일상생활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만약의 상황에 우리 국민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이런 안보 불감증은 정부와 정치권의 안이함에서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6차 핵실험에 성공하고 대륙 간 탄도미사일(ICBM)을 시험해도 그저 하루 이틀 뉴스거리로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이러다가 과거의 쓰라린 역사적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일본이 조선 침략을 위해서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다가 임진왜란을 겪었다. 유성룡이 징비록을 남겼지만 임진왜란이 끝난 지 30년 만에 다시 병자호란을 맞이했다. 

결국 인조는 청나라 황제 앞에 엎드려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바닥에 찧는 수모를 당했다. 구한말에도 러시아, 청나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헤매다가 결국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됐다.

 

이런 과거 역사의 불행은 두 가지 원인에 기인한다. 하나는 바깥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몰랐다. 두 번째는 극심한 내부 분열이다. 지금 매우 안타깝게도 바깥세상의 움직임에 대한 안이한 대처 그리고 내부 분열이라는 위험한 두 가지 요소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움직임과 속내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글이나 중국 언론에 등장하는 시진핑의 언급만 해석하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이다.

 

내부적으로는 또 어떤가.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외교ㆍ안보의 방향설정이나 국방정책에서의 선택과 집중보다는 정치적 신경전만 난무하다. 전술핵, 원자력 추진 잠수함, 코리아 패싱, 전시작전권 전환 등 모든 이슈가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의 안보 난맥상을 극복하고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우선 필요한 일들이 있다.

 

첫째, 국방에 있어서 정쟁을 피하고 일관된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외교ㆍ안보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국방정책은 위험하다. 예측 가능한 국방을 위해서는 진영논리를 벗어나 서로 양보하는 수밖에 없다. 전시작전권 전환이나 군복무기간 단축 등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는 일정표를 정해야 한다.

 

둘째, 국민에게는 안보상황과 대처방안에 대해서 자세하게 가르쳐 줘야 한다. 대피요령도 필수적이다. 지금 국민은 개별적으로 생존배낭 구입 등을 알아보고 있을 정도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은 국가가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셋째, 우리 국민 모두가 철저하게 역사의식을 갖추는 일이다. 이것의 기본은 교육이다.

국방위원으로서 미국의 항공모함과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방문해서 직접 승선한 경험이 여러 차례 있다. 미국의 그런 어마어마한 규모의 전략자산을 둘러보면서 한없이 부럽고 놀라웠다. 하지만 그런 전략 자산보다도 더 부러운 것이 있다. 8년 전 하와이 미 태평양 사령부에 갔을 때다.

 

미 공군사령부 건물 외벽 일부가 총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약간의 돈을 들여 리모델링을 했을 법한데도 말이다. 사령관은 “우리 병사들은 매일 아침 구보를 합니다. 구보할 때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우리를 향해 쏜 총탄의 흔적을 우리 병사들은 매일 봅니다. 우리는 그날을 잊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국방위원장으로서 미국이 부러운 것은 미국의 항공모함이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 아니라 바로 그런 미국의 강인한 역사의식이다.

 

북한의 핵위협을 이겨내고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화’에 대한 막연한 강조보다는 ‘철저한 역사의식’과 함께 모든 위협적인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유비무환’이 아닐까 한다.

 

김영우 국회 국방위원장(바른정당 포천·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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