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내려놓기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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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다 안다. 돈이든 생각이든 권력이든 무엇 하나 내려놓기가 힘들다는 걸. 세상 사람들은 또 안다. 그중에서도 정치권력이 내려놓기 제일 어렵다는 걸.

 

미국 오하이오주에 신시내티라는 도시가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신시내티 오케스트라를 떠올릴지도 모르겠고, 야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신시내티 레즈라는 빨간 양말 신은 유서 깊은 프로야구팀을 기억해 낼지도 모르겠다.

 

신시내티는 킨키나투스라는 로마 장군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 어렵다는 절대권력을 내려놓은 분이다. 기원전 458년 로마가 외적의 침입을 받아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겁에 질린 원로원 의원들이 킨키나투스에게 달려가 공화국을 맡아 달라고 애원했다. 평화시의 집정관보다 훨씬 큰 절대권력을 가진 독재관이라는 자리를 만들어줬다.

킨키나투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몸소 전쟁터에 뛰어들어 적들에 맞서 싸워 로마를 지켜냈다. 역사의 정점은 그다음. 놀랍게도 킨키나투스는 독재관 자리를 곧바로 내려놓고 농장일로 돌아간 것이다. 전쟁영웅에 대한 로마시민들의 뜨거운 성원도 뒷받침되고 있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수십 년 집권이 가능했는데도 말이다.

 

국가의 위기를 해결하고 즉시 절대권력을 내려놓은 킨키나투스는 자신의 야심보다는 로마 공화정의 정신을 우선하는 공인의식과 권력에 초연한 기상의 전형으로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그 결과 후대에 그의 이름을 딴 도시가 여기저기 생겨났는데 그중 하나가 신시내티인 거다.

 

부천시 김만수 시장이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불출마!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라 신선하다. 권력을 내려놓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에, 그리고 재선의 현직시장으로 내년 선거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상황에서 내려놓은 것이기에 더욱 신선하다. 

김 시장은 얘기한다. “시장을 해보니 부천시의 살 길은 끊임없는 혁신에 있음을 매 순간 절감합니다. 4년은 짧고 12년은 너무 긴 것 같습니다. 더하라고 하면 할 수도 있겠고 여러 구상도 있기는 하지만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자치단체장이 법적으로는 세 번, 즉 12년을 할 수 있지만 8년이면 보여줄 수 있는 것 다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12년을 꽉꽉 채우다 레임덕과 측근 비리의 덫에 걸려, 성공한 시장과 군수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김만수 시장은 또 얘기한다. “자신감은 본의 아니게 자만으로 흐를 수도 있고 익숙함은 자칫 안일과 손잡을 수도 있습니다.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계속 헤쳐가기 위해서 저도 미래를 위한 재충전이 필요하고 부천시도 끊임없이 새로운 혁신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로마장군 킨키나투스를 가장 존경했던 사람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다. 킨키나투스 소사이어티 회장을 역임했던 워싱턴 역시 두 번이나 권력을 내려놓는데, 한번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에 승리한 다음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고 고향인 버지니아로 돌아간다. 두 번의 대통령직을 수행한 다음에는, 3선 제한이라는 헌법조항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했고, 이것이 미국 대통령 3선제한이라는 전통으로 이어지게 된다.

 

내년에 지방선거가 있다. 전국 곳곳에 다시 출마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심하는 단체장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안위, 권력, 또는 다른 할 일 없음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민주공화국의 발전과 시민의 안위를 판단기준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로마의 킨키나투스, 미국의 조지 워싱턴, 그리고 부천시의 김만수처럼 말이다.

 

박수영 아주대 초빙교수·前 경기도 행정1부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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