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확산… 성폭력 피해자 아픔 공감하고 배려해야”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성희롱 폭로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미투(Me Too) 운동’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투 운동은 지난해 미국 할리우드에서 처음 시작된 캠페인으로 성추행·성폭력 등 성범죄 피해자들이 소셜미디어(SNS) 상에서 ‘나도 피해자’라는 목소리를 내는 운동이다.
한국판 미투 운동에 대해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은 “그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왔던 성폭력 피해자들의 노력에 서지현 검사의 용기가 더해진 결과물”이라며 “이번 일을 기회로 삼아 가해자보다 오히려 피해자들이 수치스러워하고 피해자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 하는 한국 사회의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Q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어떤 곳인가.
A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폭력 피해 여성들을 돕고 상담을 하는 기관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폭력방지를 통한 여성인권,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뿐 아니라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스토킹과 디지털 성폭력, 데이트 폭력 등 폭력으로써 고통받는 여성들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룬다.
전국에 있는 해바라기센터(성폭력 및 가정 폭력 피해자의 상담과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 여성긴급전화 1366, 쉼터와 상담소 등 기관들과의 파트너쉽을 통해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지원책과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성폭력 매뉴얼 등은 전국의 관련 기관과 공공기관 등에 배포된다. 또 이곳에 1366 중앙지원단을 두고 직접 상담 전화도 받는 등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첫 관문을 지원하고 체계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곳이다.
Q 서지현 검사로 우리 사회는 지금 ‘성범죄’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의 미투운동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A 서지현 검사의 고백은 성 문제에 대한 한국 역사에 중요한 정점을 찍었다. 서 검사의 용기있는 행동은 ‘한국에서 최고위층에 있는 검사도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로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결국 권익위는 사상 처음으로 검찰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작했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이번 사건을 직접 언급하며 진상파악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미 이번 사건 이전에도 한국의 ‘미투’운동은 진행 중이었다. 1990년대 초반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여성긴급전화 등이 등장하며 상담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미투활동이 이뤄져 왔던 것이다.
다만 그때는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기에 미국과 같은 양식의 미투는 처음이지만 수십 년간 한국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 그들의 용기있는 고백은 계속됐었다. 단순히 이번 사건으로 순간 뜨겁게 달아오른 문제가 아니라 미투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 그동안 진행된 노력과 서 검사의 용기가 더해져 한국 성 문화의 큰 변화시기가 온 것이다.
Q 그렇다면 혹시 한국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려 했던 적이 있는지.
A 지난 2002년 12월 한국 성폭력상담소와 민간 NGO가 처음으로 미국의 ‘Speak Out(스피크아웃)’을 서울에서 진행했다. 스피크아웃은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피해 사실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칠 수 있도록 하는 자리다.
미국에서는 공개와 비공개 창구 2곳을 마련해 피해자들이 직접 고백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당시 한국 사회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공개 고백에 대한 굉장한 부담감이 있었다. 이에 비공개 방식으로만 진행됐고, 매해 스피크아웃이 치러지고 있다. 이 역시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Q 여전히 대부분의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알리기 두려워한다. 이유는 무엇인가.
A 성범죄 피해자들이 숨는 이유는 ‘수치심’ 때문이다. 자신이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쉬쉬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구조 자체가 잘못 돼 있기 때문이다. 왜 성희롱, 성폭행을 당하면 수치스러워야 하는가? 그것도 왜 피해자가 수치스러워야 하는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그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피해자를 경제적으로 도와주고 구제해주는 법과 제도만 만든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여성 등 약자에 대한 법은 해외에서 벤치마킹을 올 정도로 발전해 있다. 하지만 그 법을 해석하는 국민들의 문화 수준이 아직 성장하지 못했기에 현실에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치심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문화가 바뀌지 않고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여전히 뒤로 숨을 수밖에 없다.
Q 또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린 이들은 2차 피해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A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예를 들어보자. 그 누구도 피해자에게 “쟤가 원래 무단횡단을 자주한다”라며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설령 피해자가 무단횡단을 일삼더라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성희롱이나 성폭행 모두 똑같은 사고인데 피해자에게만 색안경을 끼고 그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지금 서 검사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다. 인격모독부터 “검사인데 그동안 법적 조치를 안 했다는 게 말이 되나?”, “8년 만에 이제 와서 말하는 것은 정치적 이유가 있는 것 아닌가?”, “승진에 불만을 품은 고발 아닌가?”라는 등의 각종 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2차 피해를 조장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고 벌을 줄 수는 없다.
국민들이 변해야 한다. 피해자가 자신의 일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고,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겠는지 돌이켜 생각해보고 그 아픔에 공감해줘야 한다. 따뜻한 공감과 배려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는지, 적극적인 응원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서 검사의 사무실에 배달되는 꽃바구니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 한편에서 진정한 응원을 해주길 바란다.
Q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국가와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은.
A 이번 기회를 계기로 ‘명예훼손’ 등 성범죄와 연관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사실 관계를 알려도 가해자에 대한 명예를 훼손했다는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 또 무고죄 남용 등 문제제기를 가로막는 관련 법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
기업의 변화도 필요하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는 당연하고 이를 넘어 피해자가 사건 전과 동일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피해자는 결국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
서 검사는 지금 병가를 낸 상태다. 민간 기업에서는 서 검사처럼 병가를 내는 것도 어려운 곳이 많을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논의되지 못했지만 법적 지원, 의료적 지원, 쉼터지원 외에도 직장 내에서 피해자를 위한 지원제도가 시급하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인식 개선과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하다. 미투 운동의 불씨가 사그러들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더 안전한 사회, 더 안전한 직장 문화가 조성되길 바란다.
Q 진흥원의 향후 계획은.
A 주요 이슈에 대해 매번 ‘사건 이후 포럼’을 열어 이슈를 진단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서 검사의 등장 전에도 한국의 미투 운동에 대해 정의하는 시간을 가지려 했는데 예상보다 너무 빨리 한국을 강타했다. 이달 열리는 포럼에서 한국의 미투를 짚어보고 향후 진행 추이를 좀 더 살펴본 뒤 여성부 산하 기관으로서 입장을 표명할 계획이다.
또 지금 진행 중인 지원 사업들을 더욱 촘촘히 추진,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일들을 지속해나갈 것이다. 또 지금 미투에 동참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우리의 창구를 활용해 지원할 계획이다.
Q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힘내라. 언제나 당신들을 지원하는 분들이 주변에 너무나도 많다. 우리는 함께 간다. 미투의 뜻은 ‘나도 역시’ 라는 의미도 있지만 ‘더는 이 꼴 못 보겠다’, ‘앞으로 우리는 성범죄에 대해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라는 강력한 의지의 천명이다. 당신과 함께 가겠다. 절대 기죽지 말고 기운 잃지 말고 우리 함께 가자. 혹시 고민하고 있다면 언제든지 전화해라. 걱정하지 말라.
변혜정 원장은…
1964년 5월18일 서울 출생
고려대 심리학과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박사
2017.11.~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
2012.06~ 2017.05. 충북도청 여성정책관
2008.03~ 2012.05. 서강대 성평등상담실 상담교수
2004.09~ 2008.02. 이화여대 여성연구소 연구교수
2002.12~ 2006.01.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장
한진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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