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변혜정 원장, 미투운동에 대해 말하다

“성폭력 피해자가 더 고통스러운 한국 사회의 문화 바꿔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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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들의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그 아픔에 공감할 때 진정한 우리 사회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의 성희롱 폭로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미투(Me Too) 운동’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투 운동은 지난해 미국 할리우드에서 처음 시작된 캠페인으로 성추행·성폭력 등 성범죄 피해자들이 SNS상에서 ‘나도 피해자’라는 목소리를 내는 운동이다. 

 

한국판 미투 운동에 대해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변혜정 원장은 “그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왔던 성폭력 피해자들의 노력에 서지현 검사의 용기가 더해진 결과물”이라며 “이번 일을 기회로 가해자보다 오히려 피해자들이 수치스러워하고 피해자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 하는 한국 사회의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서지현 검사로 우리 사회는 지금 ‘성범죄’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의 미투운동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서지현 검사의 용기있는 행동은 ‘한국에서 최고위층에 있는 검사도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로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이미 이번 사건 이전에도 한국의 ‘미투’운동은 진행 중이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여성긴급전화 등에서 상담 형식을 통해서 미투활동이 이뤄져 왔다. 다만 그때는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기에 미국과 같은 양식의 미투는 처음이지만 수십 년간 한국의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 그들의 용기있는 고백은 계속됐었다. 그동안 진행된 노력과 서 검사의 용기가 더해져 한국 성 문화의 큰 변화시기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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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대부분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알리기 두려워한다. 이유는 무엇인가.
성범죄 피해자들이 숨는 이유는 ‘수치심’ 때문이다. 자신이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쉬쉬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문화적 구조 자체가 잘못돼 있기 때문이다. 왜 성희롱, 성폭행을 당하면 수치스러워야 하는가? 그것도 왜 피해자가 수치스러워야 하는지?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그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피해자를 경제적으로 도와주고 구제해주는 법과 제도만 만든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법을 해석하는 국민의 문화 수준이 아직 성장하지 못했기에 현실에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치심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문화가 바뀌지 않고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여전히 뒤로 숨을 수밖에 없다. 
 
- 또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린 이들은 2차 피해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예를 들어보자. 그 누구도 피해자에게 “쟤가 원래 무단횡단을 자주한다”라며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설령 피해자가 무단횡단을 일삼더라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성희롱이나 성폭행 모두 똑같은 사고인데 피해자에게만 색안경을 끼고 그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2차 가해를 조장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고 벌을 줄 수는 없다. 국민이 변해야 한다. 피해자가 자신의 일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고,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겠는지 돌이켜 생각해보고 그 아픔에 공감해줘야 한다. 

-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국가와 국민이 해야 할 일은.
이번 기회를 계기로 ‘명예훼손’ 등 성범죄와 연관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사실 관계를 알려도 가해자에 대한 명예를 훼손했다는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 기업의 변화도 필요하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논의되지 못했지만 법적 지원, 의료적 지원, 쉼터지원 외에도 피해자가 이전과 똑같이 회사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국민의 인식 개선과 끊임없는 관심이 필요하다. 미투 운동의 불씨가 사그러들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더 안전한 사회, 더 안전한 직장 문화가 조성되길 바란다.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여성단체 회원들이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촉구 전국 동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여성단체 회원들이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촉구 전국 동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글_한진경기자 사진_조태형기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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