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재정운용의 공정성 강화, 국민 납득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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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통계청이 새롭게 개편해 발표한 소득분배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득재분배 효과는 11.2%다. 미국(22.9%), 영국(30.8%), 프랑스(42.8%) 등 OECD 주요 선진국들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소득재분배 효과는 시장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기준으로 측정한 소득분배 상태보다, 세금을 납부하고 정부로부터 각종 재정지원을 받은 후 실제 사용 가능한 소득을 기준으로 측정한 소득분배 상태가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측정한 수치다. 이는 고소득 계층에 얼마나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됐고 저소득 계층에는 얼마나 더 많은 정부지원이 이뤄졌는지를 나타낸다. 최근 우리 국민이 왜 그토록 조세의 누진성 강화나 부자증세 등 조세정의 확립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조세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재정의 공정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소득재분배 효과와 관련한 많은 연구는 조세보다는 재정지출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더 확실하고 크게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세금을 누구에게 부담시키는지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돈을 누구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지출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정의 현주소를 보면 소득재분배 효과를 높이기 위한 재정의 공정성 강화가 절실하다.

 

먼저 정부지출 규모 자체가 작다. 2016년 기준 중앙과 지방정부, 사회보장기금을 포함한 전체 정부지출의 GDP대비 비중을 보면 우리는 32.3%로 미국(37.8%), 영국(41.5%), 프랑스(56.37%) 등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그만큼 우리 국민이 누리는 공공서비스 수준도 낮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지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소득재분배 창출요인 중 하나인 공적사회보장지출(public social expenditure)의 GDP대비 비중을 보면 우리는 10.4%에 불과하지만 OECD 국가 평균은 21.0%에 달해 우리의 두 배다. 공적연금의 도입 시기가 늦어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저소득층과 실업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재정지원을 대폭 확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정부가 더 많은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국민부담이 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합리적인 국민은 세금이 자신들에게 어떤 혜택으로 돌아오는지를 인지하지 못하는 이상 부담이 늘어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과거와 같이 경제정책을 명목으로 소수 대기업과 재벌을 위해 재정이 사용된다면 국민부담을 늘리는 일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재정의 공정성을 강화해 보편적 국민을 위해서 돈이 쓰임을 알 수 있어야 부담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동의가 가능하다.

 

물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재정의 공정성 강화가 곧 모든 국민의 부담증가 동의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나와 내 가족, 가까운 이웃 중 누군가가 사회에서 가장 빈곤한 처지에 놓일 확률이 제로가 아닌 이상 재정의 공정성을 강화할 필요성에 대해 대부분은 동의할 것이다. 따라서 국민적 부담을 확대하고 재정의 역할을 늘려나가려면 먼저 재정운용의 공정성을 강화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얻어야 한다.

 

얼마 전 정부로 하여금 재정이 소득계층별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한 ‘소득재분배 인지예산서 및 결산서’를 작성토록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국가재정법에서는 재정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성적평등을 지향하기 위해 ‘성인지예산서 및 결산서’을 작성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재정이 소득계층별로 얼마나 많은 혜택을 제공했는지, 소득계층 간 재분배를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분석한 ‘소득재분배 인지예산서 및 결산서’를 작성하자는 것이다. 정부에게는 재정의 공정성 강화를 독려하고 그 성과를 국민이 인지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다. 법안이 통과돼 제대로 운영된다면 재정의 공정성 강화와 더불어 잘 사는 사회실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정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군포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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