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이번에는 좋은 느낌… 그리운 가족 꼭 만나고 싶습니다”

원형기 할아버지·안 할머니, 가슴 한켠에 묻어만 뒀던 미상봉 이산가족의 아픔·그리움 꺼내
남북정상회담 지켜보며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

▲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수원시 영통구 매탄동 자택에서 TV로 정상회담을 지켜보던 남북이산가족 원형기씨가 이산가족 방문신청서 영수증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판문점공동취재단=전형민기자
▲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수원시 영통구 매탄동 자택에서 TV로 정상회담을 지켜보던 남북이산가족 원형기씨가 이산가족 방문신청서 영수증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판문점공동취재단=전형민기자
“이번에는 느낌이 좋습니다. 꿈에도 그리운 가족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

지난 1945년 해방 이후 황해도 연백을 떠나 서울 서대문으로 이주한 원형기 할아버지(84)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가운데 그동안 가슴 한켠에 묻어만 뒀던 미상봉 이산가족의 아픔과 그리움을 꺼냈다.

원형기 옹은 북녘에 피붙이 누나를 두고 있다. 어린 시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점심 도시락 하나 변변치 챙겨먹지 못했던 살뜰한 간호사 누나였다. 함께 서대문에 살다가 평택에 시집간 누나가 하필 시댁인 황해도를 찾았을 때 6ㆍ25전쟁이 발발하면서 누나만 북에 갇히게 됐다. 

누나와 헤어지기 전, 원 할아버지는 배고픈 누나를 위해 근처 두부 공장에서 콩비지를 구해 누나의 도시락에 넣어준 적이 있다. 이후 누나의 병원에서 이 사실을 알고 가엾게 여겨 누나에게 매 점심 끼니를 챙겨주겠다고 약속한 기억도 있다. 그만큼 원 할아버지에게 누나는, 누나에게 원 할아버지는 애틋한 존재였다.

당시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추억을 상기하던 원형기 할아버지의 눈시울은 금세 붉어졌다. 원형기 할아버지는 “누님이 살아계시다면 88살일 텐데 다시 만날 날이 있다고 믿는다. 꿈에서라도 우리는 꼭 만날 거라 희망한다”면서 “다시 만나게 되는 날 누님에게 콩비지가 아닌 금반지를 선물해 콩비지보다 더 오랜 시간 징표로 간직했으면 한다. 또 그동안 너무나 보고 싶었다고, 정말 많이 힘들고 그리웠다고 펑펑 울면서 안기고 싶다”고 말했다.

함경남도 함흥이 고향인 또 다른 이산가족 안 할머니(81) 역시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맞는 기분이 남다르다.

안 할머니가 살던 마을은 중공군이 남하하면서 폭격을 해 ‘불바다’가 됐다. 당시 폭격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큰 언니, 올케와 1살배기 조카와 함께 흥남부두에서 미군의 빅토리아호를 타고 남으로 건너오게 됐다. 하지만 함흥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던 오빠가 6ㆍ25전쟁에서 강제로 인민군에 징집돼 둘은 기약 없는 이별을 나눴다.

안 할머니와 13살 차이가 나는 오빠는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 누구보다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안 할머니는 어릴적 오빠가 주변 친구들의 놀림에도 언제나 막내인 자신을 코트 속에 숨기며 극장을 구경시켜준 추억을 소중히 지킨다. 

안 할머니는 “흥남부두에서 거제도로 넘어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방문했다. 혹시 오빠가 포로수용소에 포로로 들어오지 않을까하는 마음에서다”며 “제겐 누구보다 소중한 오빠였다. 올해로 오빠가 94살이 됐는데 혹시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르지만 살아있다면 핏줄인 만큼 꼭 찾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나를 품안에 넣고 안아주었던 오빠였기에 이제 내가 오빠의 자식들을 꼭 안아주고 싶다”며 간절한 마음을 내비쳤다.

남북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과정을 TV로 지켜보며 원형기 할아버지와 안 할머니는 연신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남북 정상이 만나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돼 기대가 된다. 남북 두 정상의 만남이 사무치게 그리운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판문점공동취재단=수습 이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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