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을 감시·견제해야 할 권력기관들이 오히려 이를 방조·묵인한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여기에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져 아무리 노력해도 나와 내 자식의 미래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현실에 대한 ‘불안’이 합쳐져 ‘이게 나라냐’는 외침으로 타올랐다. 그렇게 1천700만 촛불은 권력의 지형을 바꾸고, 세계정치사상 유례없는 직접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새 정부는 이러한 촛불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권력기관들이 그 본연의 사명을 다하도록 개혁하고, 지난 수십 년간 재벌중심의 투자촉진에만 매달려 빈익빈·부익부의 양극화만 가속시킨 이윤주도성장에서 벗어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 생산성을 높이려는 소득주도성장과 4차산업혁명 시대에 벤처 창업생태계 조성을 필두로 창의와 융합의 정신을 촉진시키는 혁신성장을 핵심으로 하여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 목표의 실현을 위해서는 선출된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정치를 맡길 수 없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정신이 생활정치의 현장에서 나타나게 만들어야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도 이처럼 국민소통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하기 위한 시도였다. 국민은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에 265일간 무려 18만여 건의 청원으로 화답했다.
국민을 불안하게 한 것은 경제뿐만이 아니었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이 6차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강행하고, 그에 대응해 미국의 선제타격론이 공공연히 나돌면서 한반도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웠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대화를 통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이라는 일관된 소신과 원칙에 따라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러내면서 역사적인 4·27 판문점 선언을 이끌어 냈고, 우리 8천만 한민족은 공동번영과 통일을 꿈꿀 수 있게 됐다. 어느 기자의 표현처럼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관심이 없든, 우리가 그에게 빚을 진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4·27 판문점 선언의 이행과 여러 개혁과제를 위한 후속 입법·예산 조치들을 처리해야 할 국회가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일하지 않는 국회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원인은 여소야대의 정치상황이다. 이미 6·13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이 불가능해졌지만,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를 비롯해 모든 정치권이 개헌의 필요성 자체에는 동의했던 이유도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여소야대 구조와 그로 인한 국회의 무능을 극복할 수 있는 권력구조와 선거제도에 대한 개편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어제(5월10일)가 제7회 유권자의 날이었다는 점에서 지방선거 동시 개헌이 무산된 원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동시 개헌을 위해 반드시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국민투표법 개정을 사실상 거부한 야당에게 있다. 정치공학적인 계산에 따라 눈앞의 선거에 불리하면 어떤 공약이나 약속도 서슴지 않고 파기해버리는 것은 유권자를 무시하는 행태이다. 다만 여소야대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야당을 설득하고 협치의 묘미를 발휘해야 할 여당의 정치력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한 달 남짓 앞둔 6·13 지방선거가 중요한 이유는 그 결과가 꺼져가는 개헌의 불씨를 되살리고 천재일우의 기회로 잡은 4·27 판문점 선언의 후속조치와 ‘나라다운 나라,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위한 여러 개혁 조치의 성공 여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투표참여와 현명한 판단이 절실한 이유이다.
김진표 국회의원(더민주·수원무)·前 국정기획자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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