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삼류 청문회를 바로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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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정기국회 시작과 함께 10일부터 인사청문회가 시작됐다. 과거 인사청문회는 여러 면에서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가늠케 했다. 고위 공직자 후보자들의 도덕성은 여전히 국민의 기대치와는 괴리가 컸다. 

일부 후보자는 자질과 정책을 검증하기 위한 기본적인 자료조차 제출하지 않는 등 무성의한 자세로 임했다. 한편, 청문위원(국회의원)들은 인신공격성 질문과 윽박지르기, 억지 주장과 버럭 화내기로 일관했고 청문회는 구원(舊怨)의 앙갚음이나 한풀이 장으로 변질하면서 국민에게 피로감마저 줬다.

 

고위 공직자 후보들의 도덕성은 항상 정권마다 논란이 됐고 그때마다 정부는 그것을 해명하느라 허둥대는 모습을 반복해 왔다. 어느 정부 할 것 없이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 탈세 등에 대한 비리 의혹은 단골 3종 세트 메뉴였다. 

어느 총리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는 전날까지도 위원회의 의결자료를 60% 이상 제출하지 않았고, 겨우 비공개라는 단서를 달아서 일부 자료들에 대해서 열람만 가능했던 경우도 있었다. 자질과 능력에 대한 면밀한 검증보다는 조롱과 면박, 막말 등으로 우리의 인사청문회는 삼류 청문회, 보여주기 쇼에 불과하다는 자조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인사청문회의 현주소가 이렇더라도 우리는 인사청문회제도를 버릴 수는 없다. 인사청문회 무용론은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인사청문회제도는 시민교육의 장으로서도 중요한 제도다. 고위 공직자 후보들에 대한 부적격 기준을 만들어가면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들을 만들어가는 절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부적격 기준이 없거나 상황에 따라 바뀌는 고무줄 잣대가 적용됐다는 점이다.

 

지난 인사청문회를 살펴보자. 김대중 정부 시절 장상 총리 후보자의 결정적 낙마 이유는 위장전입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김병준 총리 후보자는 논문 표절을 이유로 낙마시킨 바 있다. 그렇다면, 위장전입과 논문 표절을 이유로 그 이후에 진행되었던 인사청문회에서 낙마했던 후보자들이 있었을까. 이후의 청문회 과정에서는 위장전입이나 논문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파렴치한 사유가 밝혀져도 낙마하지 않았거나 구차한 변명이나 버티기로 일관했고, 결국 고위 공직자가 됐다.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지 20년이 되어간다. 어느 정도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의 상식 수준에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점들을 사회적 합의로, 하나씩이라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미국 청문회 제도와 같이 도덕성과 정책 검증이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장기적 과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인사청문회에서는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부적격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보자.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고, 국민의 현명한 판단을 불가능하게 하는 무성의한 자료제출 등은 날 선 비판으로 바로잡자. 또 있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권 남용을 막고,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성과 정책능력을 검증하는 제도다. 그럼에도, 내년 4월에 치러지는 보궐선거의 승기를 잡고자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특정 후보를 낙마시키려는 시도가 있다면, 그것은 삼류 청문회를 만드는 주요요인이다. 이와 같은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경고를 보낼 필요가 있다.

 

인사청문회는 청렴하고 능력 있는 고위 공직자를 골라 쓰겠다는 국민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제도다. 따라서 인사청문회는 정파적 이해에 따른 낙마가 아닌 제대로 된 사람을 고용하겠다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업무에 대한 능력과 자질에 대한 검증이 우선돼야 한다. 이번 청문회가 국민의 상식선에서 국민을 위한 청문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오현순 매니페스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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