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국가대표팀 벤투호에서 캡틴 완장과 등 번호 7번을 달았던 선수는 손흥민이었다. 하지만 그가 없는 벤투호의 7번이 누구에게 돌아갈지는 모두의 관심사였다. 주인공은 황인범 선수였다. 등 번호는 단순하게 그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라 팀의 전술적인 포지션과 스타일을 뜻한다. 7번은 팀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번호로, 에이스의 상징이다. 등 번호를 붙이는 종목을 보면 주로 구기 종목으로, 과거 선수 구별에서 시작한 등 번호가 이제는 자신의 목표나 의미를 붙여 사용하고 해석하는 스토리텔링으로 발전했다.
이승엽 선수는 그의 영웅 장종훈 선수의 홈런 35개를 넘겠다는 의미로 35개 홈런신기록에 1을 더한 36번을 사용했고, LA다저스 류현진 선수의 등 번호 99번은 한화 이글스의 우승연도인 99년도를 다시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사용한다. 롯데 자이언츠의 공필성 선수는 자신의 성인 공(0)을 등 번호로, 삼성 라이온즈의 장원삼 선수는 자신의 이름인 원(one, 1)삼(3)을 등 번호로 선택했다. NC 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은 행운(7)이 있으면 불운(4)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74번을 달고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팀을 지도한다. 이처럼 등 번호는 자신의 목표나 의미 이야기를 나타낸다.
선수들의 유니폼을 보면 번호가 이름보다 훨씬 크게 표시된다. 유니폼 상의 앞면과 하의에 적는 번호도 등에 적는 이름에 비해 최대 2배가 크다. 이름보다 번호가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뉴욕 양키즈 선수들의 유니폼을 보면 등 번호는 있으나 이름이 없다. 개인보다 팀이 더 중요함을 나타내고 팀플레이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개인의 영광이 팀의 성적과 연결돼 결과를 만들어낼 때 그 가치가 더욱더 커지는 것이다.
선수 생활 동안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에게 가장 큰 바람은 우승트로피나 높은 연봉만큼 가장 큰 영예가 바로 자신의 등 번호가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는 것이다. 영구 결번은 구단이나 리그가 해당 선수의 탁월한 업적을 기억하고자 그 팀이나 리그에서 선수가 선수시절 사용했던 등 번호를 빈 번호로 남겨 다른 선수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36년의 역사상 14명, 프로 농구에서는 9명의 영구 결번 선수를 가지고 있다. 역사에 비해 적은 숫자만 봐도 얼마나 명예스러운 것인지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라운드에서의 탁월한 업적뿐만 아니라 경기 외에서도 모범이 돼야 하기에 구단이나 팀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상징 상품이 된다.
나는 과연 나의 등 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만들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영구 결번을 만들려면 나보다 팀을 우선시해야, 실력보다 인품과 주변 실력을 더 키워야, 내가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인정해야만 된다.
나이키 광고에 보면 “백넘버만 봐도 당신이 누구인지 알게 하라”는 카피가 있다. 등 번호만 보고도 과연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보이는 실력보다 보이지 않는 선수들의 인성이나 인품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과연 나에게 의미 있고 소중한 숫자는 과연 몇 번인가. 자신만의 번호를 만들어 미래를 꿈꾸고 현재를 실천하고 과거를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넬슨 만델라는 “나는 내 영혼의 지도자다”라고 했다. 삶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고 번호의 주인공은 나이기에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자신의 번호를 명예롭게 만들고 자신을 주변에서 알아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
김도균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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