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을 만들 수 있다

인간의 자존감과 자신감은 대개 타인의 반응을 통해 형성된다. 태어난 후 부모의 반응과 관계를 통해 기초가 형성되는데 따라서 부모의 양육은 매우 중요한 뿌리를 만들어준다. 아기가 힘들 때 부모가 바로바로 반응을 보여주면서 필요를 채워주면 아기는 행복감을 느낀다. 이 행복감은 자신에 대한 이미지와 타인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즉 세상이 나를 이렇게 돌봐주니 난 괜찮은 사람이다. 세상은 믿을만한 곳이다라는 긍정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대개 3세까지 이런 뿌리가 형성되는데 그 이후에도 행복감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으로부터 모종의 좋은 반응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이런 반응을 통해 자라면서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지고 수리가 되는 것이다.

이를 전문적인 분야로 자기 심리학(self-psychology)라고 한다. 자기 심리학은 이런 반응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남으로써 인간의 자존감과 행복감이 유지되고 증진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비록 한 사람이 어릴 적 양육을 잘 받지 못해 자존감과 자신감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나이가 들면서 만난 다른 사람이 이런 역할을 잘해 주면 결국 보완될 수 있다. 어릴 적 고아로 자란 아이가 커서 만난 선생님을 통해 잘 자랄 수 있고 어릴 적 부모로부터 방임되거나 학대받은 아이도 좋은 형이나 스승을 만나면 이런 상처가 보완될 수 있다.

이런 역할을 해주는 사람을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는 대상’이라고 해 ‘자기-대상(self-object)’이라고 한다. 자기-대상에 해당되는 사람은 늘 무언의 따뜻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인정해 주고 격려해 준다. 자신이 가장 이상적이고 강력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해줌으로써 그런 인정을 받은 인간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강하게 느끼는 것이다. 제자가 스승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 아이가 부모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 남녀가 서로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것, 친구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 등 인간이 가지는 사람에 대한 열망은 결국 그들로부터의 사랑 반응을 통해 자존감과 자기 결속감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그 사람이 속한 공동체(작게는 집단이고 크게는 국가)에서 자기-대상을 잘 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되거나 특출나게 이런 역할을 잘 해주는 지도자가 있으면 대중은 그 사람을 따르게 되고 그 사회의 안정성도 증진될 수 있다. 한 가지 예로 들자면 25세 박모 양은 심한 우울감으로 진료실에 내원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직후에 증상이 심했는데 병력을 보니 어릴 적 어머니가 아빠와 일찍 이혼하고 새엄마와 함께 생활했다. 박모 양의 특징은 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반응에 매우 예민하다는 것이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거절을 잘 못했고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내가 만약 주장을 했는데 상대방이 그게 싫어서 날 멀리할까 늘 두렵고 눈치를 살피게 돼요’라고 했다.

이번 남자친구와는 생전 처음으로 3년 동안 사귀며 깊은 사랑에 빠진 사이였다. “그 남자가 웃으면 내가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고 그 남자가 화를 내거나 토라지면 세상이 다 무너진 것처럼 힘들고 불안했어요. 이젠 그 남자가 떠나가니 도저히 혼자서 살아갈 자신이 없어요.” 치료진은 어릴 적 양육과정에서 자기-대상 관계의 부재로 생긴 갈구함이 이 환자의 마음속에 강하게 존재하고 환자가 자기-대상이라고 생각했던 남자친구가 떠난 뒤 심한 자존감의 저하 및 자기 결속감의 붕괴를 경험한 것으로 판단했다. 2년 간의 전문상담치료 후 환자는 많이 호전되었고 결국 약물 치료를 중단한 뒤 치료를 종결할 수 있었다.

정재훈 한국정신보건연구회 정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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