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개 공공 공연장 관람보조기기 全無
경기도내 공연장은 장애인들에게 그림의 떡이다. 휠체어석, 점자안내도 등 장애인편의시설은 갖추고 있지만, 실제 장애인이 공연을 관람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탓에서다. 이들은 공연 해설자막 모니터, 공연 음성해설 이어폰 등 ‘공연 관람 편의기기’가 절실하다. 하지만 도내 공연장에는 이같은 기기와 서비스 등이 전무, 장애인에게 공연 관람은 사실상 꿈같은 이야기다. 이에 본보는 집안에만 갇혀 문화향유권을 침해 받는 도내 장애인의 실태를 짚어보고 대안을 마련해본다.
“54년 동안 살면서 단 한번도 공연을 관람한 적이 없어요”
시각장애인 최재훈씨(54)는 평생 공연장을 가본 적이 없다. 공연을 관람하기엔 공연장 안에 진입 장벽이 너무 많은 탓에서다. 그는 “비장애인들이 웃고 감동받고 눈물을 흘릴 때 우린 덩그러니 집안에 앉아 있는다. 그만큼 공연을 즐기는 것은 우리에겐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며 “비장애인들이 만들어 놓은 관람 문화의 틀에서 우리 같은 장애인은 공연 관람을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청각장애인 김나연씨(40)는 “비장애인들은 우리가 공연을 보거나 듣지 못하니 당연히 공연은 관람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관람보조기기’를 제공해주면 우리도 비장애인석에서 충분히 공연을 즐길 수 있다”며 불만을 표했다.
이들 장애인들이 말하는 ‘관람보조기기’란 공연해설 오디오 서비스, 수화통역, 좌석모니터 자막 서비스 등을 말한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좌석모니터 자막 서비스를 받으면 무대에서 어떤 내용들이 오가는지 모니터 자막으로 보며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은 한쪽 귀에 공연해설 오디오 서비스가 되는 이어폰을 끼면 생생한 음악과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도내 151개 공공 공연장 중 관람보조기기 및 서비스를 지원하는 공연장은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 대표 공연장인 경기도문화의전당도 장애인 관람편의기기 제공 서비스는 없었으며, 공연장 수준이 높다고 평을 받는 고양아람누리, 성남아트센터 공연장도 이같은 서비스 지원은 없는 실정이다. 장애인 문화예술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탓에 문화 향유는 커녕 장애인들은 집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이 현실인 셈이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7년 장애인실태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문화활동(중복선택 가능)’으로 9만 1천405명 장애인 중 6.4%만이 문화예술 공연관람을 한다고 밝혔으며 나머지 96%가 ‘집에서 TV시청’을 꼽았다. 시각장애인 장창주씨(40)는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장애인 할인, 휠체어석이 아닌 비장애인과 같은 자리에서 똑같이 공연 관람을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경기지역 장애인의 문화향유권이 외면 당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경기도에 관련 지원 법규와 예산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장애인 문화향유권 관련 지원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일선 지자체는 자발적으로 장애인 관람보조기기 예산 편성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도의 경우도 공공 공연장이나 박물관 등에 장애인 관람보조기기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고, 의정부와 성남 등 도내 일선 시ㆍ군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반면 서울시는 관련 조례가 없음에도 자체 예산을 세워 장애인 문화 관람 지원을 하고 있다. 장애인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서울시 산하 잠실창작스튜디오는 매년 5억 1천만 원의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연극과 뮤지컬 등을 열 때마다 수화통역, 공연설명 자막 모니터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또 서울시 산하 서울역사박물관은 베리어프리영화위원회와 손잡고 매년 청각, 시각 장애인을 위한 영화 상영을 주기적으로 하는 등 장애인 문화향유권 보장에 앞장서고 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장애인 관람보조기기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며, 올해 첫 경기도 추경에 관련 예산을 편성하고 장애인 문화 관람 환경을 개선하겠다”면서 “경기도 산하 공연장부터 장애인 관람편의기기를 조속히 설치하고, 각 시ㆍ군 산하 공연장에도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도록 선도적인 역할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글_허정민기자 사진_경기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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