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경기도협의회 김경숙 회장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경기도협의회 김경숙 회장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경기도협의회 김경숙 회장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가 설립된 지 72년 만에 최초 ‘여성’ 봉사회장이 탄생했다. 30년이 넘도록 취약계층을 도우며 구호활동을 펼쳐 온 김경숙(62) 신임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경기도협의회 봉사회장은 지난 2월 취임 후 경기도 내 31개 시ㆍ군에서 활동하는 527개 지역봉사회, 2만여 명의 봉사원을 2년간 이끌게 됐다.

제17대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경기도협의회 수장을 맡은 김경숙 회장은 “뿌듯하면서도 부담이 크다”며 “역대 남성 회장이 해오던 역할을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들지만, 반대로 남성이 하지 못했던 섬세한 부분을 여성 회장이기에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여성도 할 수 있다, 여성이라 잘한다는 소리를 듣도록 몸소 실천하며 그야말로 ‘일 잘하는’ 회장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Q. 어떤 계기로 봉사를 하게 됐나.

A. 30년 전 신혼 시절을 즐길 무렵 남편을 따라 연고가 없던 연천군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한탄강 인근의 오지라 교통편도 좋지 못했고, 비라도 많이 내리면 곧장 수해 현장이 되는 지역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탄강 물이 불어나면서 수해가 심해졌는데 어디서 어떻게 알고 왔는지 ‘노란 조끼’를 입고 일손을 보태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때는 그 ‘노란 조끼’가 적십자 봉사원을 상징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수해 현장에서 봉사원들이 몇 날 며칠 성심성의껏 봉사하는 모습이 참 감사하고 예뻐 보이더라. 한참이 지나서야 그들이 적십자 봉사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며칠이 지나 문득 ‘나도 봉사활동이나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노란 조끼’와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그때 적십자 봉사회에 가입해 몸을 담은 것이 봉사활동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다. 당시엔 봉사단체가 적십자밖에 없는 줄 알고 적십자에서 시작했는데, 현재까지 총 2만 시간이나 들이게 될 줄은 저도 몰랐다.

 

Q. 적십자 봉사회와 여타 봉사단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A. 적십자는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상황에선 재난구호 활동을 펼치고, 평시엔 지역사회 봉사활동이나 보건 및 안전교육 활동을 펼치는 기관이다. 청소년을 상대로는 RCY도 하지 않나. 현재 국내외적으로 정말 많은 봉사단체가 있지만 특히 적십자 봉사회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넓고, 할 일도 많은 곳이라 생각한다. 최근 일부 봉사단체는 활동을 하는 봉사원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한다든지, 하다못해 교통비라도 제공하며 신입회원을 모집한다는데 우리는 그런 게 전혀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만 봉사활동에 나선다. 이 부분이 장점이기도, 단점이기도 하지만 다른 봉사단체와 적십자 봉사회의 가장 큰 차이점이 되기도 한다. 우리 봉사원들은 별다른 대가를 바라지 않고 스스로의 활동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만큼 앞으로 ‘정직한’ 봉사회를 꾸려나가는 것이 바람 중 하나다.

 

Q.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또는 잊지 못할 일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A. 적십자 봉사회는 태안 기름유출 사건이나 세월호 사고 등 대형 재난 현장에도 급파되지만, 반찬나눔이나 김장담그기 등 소소한 봉사활동도 매일 진행한다. 개인적으로 저는 ‘수의 전달식’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아 이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약 10년 전 저희 봉사회는 홀로 사는 어르신이나 경제적 여유가 없어 수의를 마련하지 못한 어르신들을 발굴해 손수 만든 수의를 전달하는 활동을 했다. 수의를 미리 갖춰놓으면 장수한다는 말이 있는 만큼, 혹 수의가 없어 마음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이 있을까 봐 재단부터 바느질, 한지로 싸는 과정까지 온 정성을 담아 부족한 솜씨로 수의를 제작했다. 그러다 안양에 거주하는 한 쌍둥이 어르신들께 그 수의를 전달하게 됐는데 첫 마디가 “너무 행복하다”였다. 어르신들은 “내가 입고 갈 옷을 못해놔서 늘 마음이 안 좋았는데 이젠 남은 여생을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수의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이왕이면 좋은 재질, 비싼 가격을 선택하는 상황에서 그 어르신들은 저희의 미흡한 수의에도 너무 고마워하셨다. 그때 모든 봉사원이 펑펑 울었다. 저에게는 다시 한 번 봉사에 대한 열정이 생기게 한 에피소드라 머리에서 떠나보낼 수가 없다.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경기도협의회 김경숙 회장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경기도협의회 김경숙 회장

 

Q. 봉사가 몸과 마음을 모두 들여야 하는 활동이지 않나. ‘바쁜 현대인’들이 봉사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A. 봉사 의지가 있는 분들이 꾸준히 활동을 하곤 있지만 사실 봉사원 수 자체는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신입회원이 안 들어오고 기존 봉사원들은 70~80대가 되며 고령화가 심해졌다. 이 부분이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해 몇 가지 대책을 세워봤는데 ‘봉사활동 시간 인센티브’가 어떨까 싶었다.

먼저 첫 번째는 중ㆍ고교 학생들이 대상이다. 학생들이 졸업을 하기 위해선 일정 시간 이상의 ‘봉사시간’이 필요한데, 부모가 적십자 봉사원일 경우 봉사시간의 10분의 1 가량을 자녀에게 주는 식의 ‘보상제도’는 어떠냐는 구상이다. 이때 물론 학생 본인도 봉사활동에 함께 참여해야 하지만, 지금보다는 더 많은 활동자가 생길 것 같다. 이 같은 구상이 실현되면 부모나 자녀나 더욱 행복한 마음으로 봉사에 뜻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두 번째는 봉사원이 대상인 인센티브 제도다. 이는 적십자 봉사원들이 노후에 활동을 못하게 됐을 때 본인이 지금껏 해온 시간의 10% 정도를 다른 봉사자로부터 환원 받는 내용이 골자다. 예컨대 1천 시간 봉사한 봉사자가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 유료 간병인 대신 적십자 봉사원이 100시간을 함께 해준다든지, 2천 시간 봉사한 봉사자가 가족과 멀어져 혼자 살게 됐을 때 적십자 봉사원이 찾아와 200시간 말동무가 되어준다든지 하는 식이다.

이러한 부분이 관철되면 새로운 봉사원을 모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고, 봉사회 명맥을 유지하는 데도 힘이 될 것 같다. 회장이 됐으니 꼭 이뤄냈으면 하는 사안들이다.

 

Q. 앞으로의 포부나 바람, 혹은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제가 30년 동안 적십자 봉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적십자 회비가 무엇이고, 어떻게 쓰이는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1년에 한 번씩 각 가정에 적십자 회비 지로용지가 배달되지만 그때마다 ‘내면 뭐하냐’, ‘엉뚱한 데 쓰는 거 아니냐’, ‘봉사원들이 갖는다’는 등 비판적인 시선도 피할 수 없었다. 확실히 말하자면 적십자 회비는 자발적으로 내고 싶은 분만 내면 된다. 다만 적십자나 적십자 봉사회는 그 회비를 감사한 마음으로 유용하게 ‘어려운 이웃’을 향해서만 쓴다. 10년 전엔 봉사원들이 어려운 어르신을 위해 수의를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저출산 사회 속 어려운 가정을 위해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등 시대 흐름도 쫓아가면서 봉사활동을 진행하니 많은 분들이 이러한 부분을 알아봐 주시고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또 포부를 전하자면, 제 슬로건은 ‘적십자 봉사원들이 한마음으로 적십자 미래를 열어가자’는 것이다. 적십자 활동이 부끄럽지 않고, 주변인에게 인정받는 기회가 되도록 저부터 열심히 하겠다. 적십자의 손길이 필요한 각종 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가 마지막까지 남는 봉사원이 될 것이고, 적십자 ‘노란 조끼’에 누를 끼치지 않는 회장이 될 것이다. 앞으로 많은 응원과 동참을 부탁드린다.

 

이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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