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대소변의 욕구를 느껴 방출했는데 엄마는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배가 고픈데 바로 엄마가 음식을 주지 않는다. 아기는 짜증이 나고 천사였던 엄마에 대한 혼란을 느낀다. 아직 너무나도 여리고 미숙한 아기는 이런 혼란을 감당할 수 없다. 이에 아기는 나름대로 방어기제를 발휘한다. 천사엄마와 악마엄마를 분리해 다른 사람으로 기억한다. 우유에 독 한방울만 섞어도 그 우유는 독이 되기 때문에 분리해 대처하는 것이다.
생애 첫 분열이 일어난다. 이런 과정은 당분간 지속되는데 아기는 천사엄마에게는 너무나도 행복한 반응을 보이지만 악마엄마에게는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 이때 엄마의 꾸준한 양육이 중요하다. 인내를 가지고 천사의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 이런 누적된 결과가 잘 이뤄지면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도 성장, 어느 순간 천사엄마와 악마엄마가 결국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천사의 영역이 훨씬 큼으로 아이가 엄마에 대한 통합을 할 때 해독이 되는 것이다.
이런 분열과 엄마를 악마로 취급해버리는 투사의 기전은 심리적 발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첫 반응이다. 즉 내가 못난 게 아니라 저 사람, 저 상황이 나쁜 것이다. 이런 방어기제는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자신에 대한 성찰에 앞서 주변 사람이나 환경에 대한 분노가 늘 우선적으로 쌓이는 것이다. 또 자존감이나 자신감의 저하를 낳는다.
결국 성장이라는 것은 주변에 대한 분열적 태도나 분노적 접근에서 통합적 태도나 이해적 접근이 발달하는 것이다. 자신을 살펴보면 선악이 공존하며 위선적 태도가 공존한다. 이런 자신을 잘 이해하고 통합하면 주변 환경이나 사람들에 대한 이해력이 깊어지고 넓어진다. ‘나도 그런데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다’라는 관점이 생기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라는 관점이 생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안타깝게도 분열과 투사의 역사이다. 왕조시대에는 당파싸움과 상대파에 대한 숙청을 자행했다. 근대사에는 이념과 이데올로기라는 미명하에 자신은 선이고 다른 이념과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은 악으로 규정했다. 정권과 권력을 잡으면 그 동안 쌓인 한과 분노를 정의구현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을 박해하고 복수하는데 사용했다.
이는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독일에 협력한 사람들을 단호하게 처단했다. 물론 필요한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항상 무리가 있었다. 그 결과 프랑스 사회는 분열되었고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이를 수습하는데에만 수십년이 걸렸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관용과 포용, 똘레랑스(tolerance)는 극심한 갈등과 다툼에 지친 프랑스사람들이 선택한 결과물이다. 갈등의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적어도 리더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분열과 투사가 아닌 통합적 관점과 자신의 반성부터 우선하는 성숙된 성찰의 자세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분열된 남북이 하나로 통일되려면 우선 남한사회의 통합이 단단해져야한다. 남한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상대에 대한 이해와 통합적 관점으로 대할 때 단합이 이뤄진다. 남한이 먼저 성숙되고 단합된 사회가 될 때 북한을 통합적 관점으로 대하고 이해와 포용의 자세로 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통일은 또 다른 갈등과 분열을 낳을 것이고 통일비용은 상상이상으로 높아질 것이다.
정재훈 한국정신보건연구회 정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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