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결핍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 배철수씨는 29년 동안이나 같은 음악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롱런하게 된 이유로 아이들의 학자금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그를 지금까지 그 프로그램에 지각 한 번 한 적 없이 성실하게 방송노동자로 일을 하게 된 에너지원으로 ‘결핍’을 꼽았다.

사실 많은 위대한 예술가나 뛰어난 운동선수, 혹은 인도주의자들은 자신의 결핍과 콤플렉스를 연료 삼아 창조적인 일, 세상을 변화시키거나 이타적인 행위로 승화시키곤 한다.

2002년 영국의 BBC방송사가 실시한 ‘가장 위대한 영국인은 누구인가’라는 설문 조사에서 윈스턴 처칠이 1등으로 뽑혔다.

처칠은 귀족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어머니 사랑을 받지 못했고 어린 시절부터 외롭게 기숙학교에서 자랐다. 게다가 선천적으로 우울증 기질을 물려받은 처칠은 몸도 야위고 잘 할 줄 아는 게 없는 소년이었다. 그랬던 그가 우울증과 결핍을 이겨내고 훗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종식하고 특유의 유머와 불굴의 리더십으로 영국 국민을 단합시키고 희망을 주었던 영웅으로 변모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지금까지도 그의 용기있는 리더십과 영국국민을 사랑했던 마음은 많은 영국인들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듯하다.

반면 결핍을 잘 다루지 못해 생긴 최악의 경우엔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사건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요즘 뜨겁게 언론을 달구는 주인공인 승리는 승츠비로 불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덩달아 조명을 받고 있다.

아마도 승리가 자신의 클럽에서 파티를 열고 외국에서 종종 호화파티를 열었기 때문에 승츠비라고 불리었던 것 같다.

소설 속 개츠비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상류층 여성인 데이지를 사랑하고 그녀를 얻기 위해 불법적이며 부패한 사업을 벌여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호화저택에서 호화파티를 매일 열어 그녀에게 자신의 부와 성공을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속물적이며 이기적인 데이지는 결국 그를 파멸로 이끈다. 데이지가 속한 세상과 개츠비의 세상은 결코 좁힐 수 없으며 그의 전 인생을 걸고 사랑하기엔 그녀는 너무나 가볍고 가치가 없는 여자였던 것이다.

개츠비가 그토록 많은 부를 끌어모아 오직 데이지를 가지려고 열망했던 이유는 그녀 등 뒤에 올라타고 있는 상류층의 지위와 모든 기득권을 함께 가질 수 있으리라는 헛된 야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는 자신의 결핍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였고, 그 에너지를 파멸의 길로 폭주했던 것이다.

모든 사물과 현상은 양면성이 있다. 결핍 또한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삼을지 혹은 그 안에 숨어서 자기 기만과 변명으로 파멸의 길로 갈지는 자신이 선택하기에 달려있다.

이국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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