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여름 맛이 나는 요즘이다. 유난히 무더웠던 작년 여름, 방문약료 때 만났던 어르신들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문득 안부가 궁금하다. 20여년 약국 생활을 이어온 내가 첫 방문의 설렘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가 보다.
처음 만난 어르신은 김영남(가명)님이었다. 집을 찾지 못해 헤매던 우리를 향해 멀리서 손 흔들고 반겨주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집 안에 가구라곤 거의 없었지만 깔끔했다. 간경화로 인한 복수로 풍선처럼 부풀어진 배를 보여주셨을 땐 깜짝 놀랐다. 방문 전 확인한 약력과 복용하고 계신 약을 비교하니 개수가 많이 남는다. 이유를 물으니 식사를 못하는 경우가 많아 그때마다 약도 드시지 않았단다. 공복에 드셔도 되니 잘 챙겨 드시라고 하고 약달력에 약 한 봉지씩 꽂아 드렸다. 첫 만남에 대한 낯설음도 잠시 뿐. 카운터를 벗어난 어르신과의 눈높이 교감에서 신뢰라는 작은 꽃을 본 것 같다.
두 번째 방문한 어르신은 김부순(가명) 할머님이다. 어르신에 앞서 우리를 반기던 강아지의 재롱이 서먹함을 깨버린다. 굉장히 밝고 솔직한 성격이셨다. “제가요. 폐암, 유방암, 신장암을 갖고 있는 3종 세트 암환자거든요”라는 말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얼굴만 붉혔다. 드시는 약을 꺼내달라고 하니 곳곳을 열어젖힌다. 장롱에서 항암제랑 마약성 진통제가, 베개 밑에선 당뇨약이, 냉장고에선 눅눅해진 약봉지가 나온다. 상담하는 중간 중간에도 몇 봉지가 더 나왔다. 눅눅해진 약은 무슨 약인데 냉장고에 넣어 두었냐고 물으니 수면제란다. 가끔씩 먹는 거라 오래 보관하려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단다. 우선 폐기해야 할 약과 복용할 수 있는 약을 구분하고 가능하면 큰 글씨로 복용법을 적어드렸다. 약은 준비해간 약바구니에 담아 통풍이 잘되는 서늘한 곳에 보관하게끔 했다. 상담을 마치고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할머님이 살짝 말씀하신다. “사실, 어제 전화 받고 오늘 누가 온다고 했을 때 보이스피싱 아닌가? 한 숨도 못 잤다”는 말에 폭소와 함께 정다운 눈빛을 나누고 헤어졌다.
만성질환자의 증가로 많은 약물을 한꺼번에 복용하는 환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서 약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지 못해 사각에 방치된 환자들에 대한 걱정 등 이런저런 고민이 이어졌다. 이런 측면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만성질환 13개(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 만성신부전 질환 등) 중 1개 이상 보유하고 있고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약의 성분이 10가지 이상인 다제약제 복용자를 대상으로 ‘올바른 약물이용 지원 서비스’시범사업을 실시하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수 없다.
더불어 올해 경인지역본부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내 약 바르게 먹기 7계명’인 ‘기억하기, 지정하기, 가져가기, 바꾸지 않기, 정확히 먹기, 나누지 않기, 함부로 먹지 않기’는 올바른 약물 복용법 기본에 충실한 자료로 약국에 방문한 환자에게 좋은 정보가 되고 있다. 환자에게 약과 함께 올바른 약물 보관 및 폐기에 대한 내용도 함께 전하면 다 안다고 하면서도 귀 기울이는 모습이 고맙다.
성치순 수원시약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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