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억울한 누명을 쓴 베드타운

경기도 신도시 주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단순히 잠만 자는 ‘베드타운(bed town)’으로 전락한 1ㆍ2기 신도시가 3기 신도시로 인해 더 ‘베드타운’화 된다는 것이다. 또 한쪽에서는 정부가 야심 차게 발표한 3기 신도시에 대해서 ‘또 하나의 베드타운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쯤 되면 베드타운은 단지 ‘배드(bad)’한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죄악처럼 느껴진다. 이런 억울함이 없다.

베드타운은 ‘아파트’처럼 일본사람들이 멋대로 잘라 만든 엉터리 영어 중 하나다. ‘bedroom town(community)’이 정확한 명칭이며, 보다 일반적으로는 ‘commuter town(통근자 도시)’이라고 부른다. 통근자 도시는 단어 뜻 그대로 인접 대도시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도시 노동자들의 주거 도시다. 도시성장에 따라 거주지역이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베드타운들이 있고, 대도시권의 효율적 기능 분화를 위해 정부가 계획적으로 베드타운을 건설하기도 한다. 한편 이번 3기 신도시 계획에서 자주 언급되는 자족 도시는 베드타운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자체적인 경제활동과 부가가치 창출을 통해 ‘자급자족’이 가능한 도시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3기 신도시 주택용지의 3분의 2 정도를 벤처기업시설, 소프트웨어진흥시설, 도시형공장 등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도시 자족성에 관한 연구 결과들은 매우 당연하면서도 역설적이다. 신도시가 모(母)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자족성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수도권에서 자족적인 신도시 건설을 위해서는 서울 도심에서 최소한 50㎞ 이상 떨어진 지역이 선택돼야 한다는 국내 연구도 있다. 그렇다면 자족도시를 지향하는 3기 신도시는 일부러라도 2기 신도시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첨단 교통·통신 인프라를 기반으로 도시 간 왕래가 강화되는 시대에 도시의 다양한 기능을 외부도시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충족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도시권 도시들은 생산과 업무 기반 자족성을 갖추지 않더라도 도시 간 네트워킹을 통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한 뼘의 공간도 소중한 모도시 대신 용지가 풍부하고 저렴한 인근 지역에 베드타운을 조성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대규모 주거지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도시 노동자들에게 양질의 정주환경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공급할 수도 있다. 또한 베드타운의 원래 명칭인 ‘통근자 도시’가 의미하듯 모도시 및 주변도시 간의 통근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베드타운 계획의 본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기 신도시들은 빠르고 쾌적한 대용량 교통수단 대신 비싸고 혼잡을 유발하는 개인 승용차 통근을 유도한 나머지 아무 죄 없는 베드타운에 지금까지 억울한 누명을 씌운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불문율인 ‘직주근접’은 직장과 주거가 반드시 공간적으로 가까워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2012년 SF영화 ‘토탈 리콜’에서는 빠르게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시간적 직주근접’의 끝을 보여준다. 베드타운인 ‘호주’에 사는 도시노동자들이 ‘영국’으로 매일 출퇴근하는 세상이다. 지구 내부를 통과해서 반대편까지 20분 만에 도착하는 영화 속 ‘The Fall’은 없지만, 초고속·초연결의 도시네트워크 시대에 자족성과 공간적 직주근접을 앞세우는 신도시 정책은 회의적이다. ‘베드타운으로 전락한 신도시’라는 앞뒤 자른 비판은 그만하자. 이제 누명을 벗겨줄 때도 되지 않았나.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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