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과 오래 일했던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安西水丸)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에서 “사람의 죽음은 언젠가 그려졌을 한 장의 그림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일”이라고 썼다. 미즈마루는 평소에 “매력적인 그림이란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그 사람밖에 그릴 수 없는 그림”이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장애와 암 투병 속에서도 많은 이에게 희망을 남기고 떠난 장영희 서강대 교수 10주기를 맞아 고인이 남긴 주옥같은 문장을 다시 정리한 신간이 나왔다. 살아온 날들을 기적이라 말하며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많은 이에게 희망을 선물한 사람이다.
동양학 관련 저서와 역서를 100권 넘게 낸 신동준 21세기 정경연구소장이 지난달 25일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사마광의 ‘자치통감(資治通鑑)’ 전체 30권 중 1차 번역본 10권을 출간했는데 이제 신 소장의 완역은 바랄 수 없는 일이 됐다. 모든 죽음은 안타깝지만 세 사람의 경우는 새삼 ‘아깝다’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은 삶의 대극(對極)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는 말은 위안일 뿐 죽음은 죽음이다.
2천100년 전 사마천은 죽음은 새털같이 가벼운 죽음과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이 있다고 말했다.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은 역설적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신념과 철학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참 얇다. 그래도 위의 세 분은 병과 쇼크로 세상을 떠나 자살보다는 덜 안타깝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살이라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좋은 학교 나오시고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기자회견을 한 뒤 노건평씨와 연루된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이 투신자살했다. 노 대통령 자살이야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니 말할 필요도 없으나, 세상만사 돌고 돌아 이 정권 들어서도 자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정권의 칼날 앞에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노회찬 전 의원, 변창훈 검사, 조진래 전 의원 등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그들의 자살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검찰이 요즈음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며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반대하면서 ‘정의의 대변자’처럼 등장하고 있다.
경찰을 보는 국민의 불안은 더 심하다. 버닝썬 수사결과를 보면 실력도 의지도 부족한 용두사미다. 애초에 믿지도 않았지만, 명운을 걸겠다던 민갑룡 경찰청장의 말은 허언으로 끝났다. 이래서야 수사종결권을 달라고 주장할 염치가 되나. 자살자를 만드는 사회는 저열한 사회다. 생활고와 병고뿐 아니라 법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법고(法苦)의 수렁에서 빠져 자살하는 국민이 없어야 한다.
1921년 소설가 현진건은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애국적 지성들이 어쩔 수 없는 절망으로 주정꾼으로 전락하게 되는 ‘술 권하는 사회’라는 소설을 발표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우리의 현실은 이 시대가 ‘자살을 권하는 사회’를 넘어 ‘자살을 강요하는 사회’로 가고 있음을 느낀다. 자살을 강요하는 사회는 국가에 의한 타살이나 다름없다. 그 사람이 죽지 않았다면 볼 수 있었던 그림은 비단 화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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