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국 사태’를 통해 “좌파 진보의 민낯”이니 “진보의 위선”이라는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 됐다. 거기에 맞서 서초동 집회에선 “수구 보수의 꼴통 짓”이라고 대꾸하고 있다. 2019년에도 보수·진보 싸움은 여전하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한국인 최초로 ‘정신분석학적 정치·사회이론’을 전공해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용신 교수는 ‘보수’의 상대어는 ‘진보’가 아니라 ‘혁명 또는 급진’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진보를 굳이 정의하자면 ‘사회주의적 가치의 실현을 주장하는 세력에게 붙여진 이름표’라고 말한다.
보수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정치세력에 대한 이름표지만 진보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에서만 통용되는 용어로 차라리 사회주의자, 분배주의자, 공동체주의자, 평등주의자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지금의 우리 사회는 매우 다원화돼 있어 무엇이든 보수와 진보로 양분할 것이 아니라 정책에 따라 거기에 합당한 이름표를 붙이면 된다고 결론 맺는다.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우리 경제정책에 대해 분배를 강조하면서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해묵은 보수·진보 논쟁보다는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어떻게 해야 제자리에 가져다 놓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지금 정권은 사실상 국정운영 능력을 상실했다. 경제·외교·안보·교육·사회통합 모두 실패했다. 모든 정책이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찾는 연목구어(緣木求魚) 식이다. 현실은 도외시한 채 시대착오적 정책만 남발하고 있다.
딱 잘하는 것 하나는 ‘현금살포 정책’이다. 확대 재정이란 미명으로 국민 전체를 배급받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위기의 극한까지 가서야 정신을 차릴 것이나 그때는 이미 파국이다.
대한민국은 70여 년간 성장하는 역동적 국가였다. 그러나 지금은 성장도 멈추고, 인구는 줄고, 국제적 위상도 떨어지고, 민주주의는 위기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대변되는 국가의 정체성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
문 정권이 아무리 ‘더불어 잘 사는 나라’를 만든다고 외치지만 성장이 없는데 좋은 분배가 이뤄질 수 없다. 국민의 세금을 미래에 대한 대비 없이 당장 오늘을 위해 쏟아붓는 일에만 몰두한다. 선거법 개정으로 차기 정권 창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시대를 읽는 통찰력이나 통합의 리더십은 남의 나라 일이다. 나라 안팎은 구한말보다 더 심각하다. 인공지능 디지털 혁명 시대로의 전환, 신냉전체제와 각자도생으로 치닫는 안보위기, 비관적인 북한의 비핵화, 성장 동력을 상실한 한국경제 등 도약이냐, 침몰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조국 사태에 이어 유재수 비리 무마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은 청와대 핵심으로부터 정권 균열의 신호탄이다. 이런 판국에 대통령은 국민 보고 편향된 책이나 읽으라 하고 비서실장은 ‘고래고기’ 수사 때문에 울산에 내려갔다는 한심한 소리만 하고 있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깼을 때 갈 길이 없는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깨어있는 국민이라야 산다”고 절규했다.
자기보다 저급한 사람들에게 지배받지 않으려면 깨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분노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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