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B급 문화의 반란

모두들 꼭대기를 좋아한다. 상위 1%의 타이틀이 붙는 걸 좋아하고 펜트하우스와 리미티드 한정판을 위해 아낌없이 주머니를 열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귀한 것을 찾는 사람의 심리란 남들과 다른 차별성에서 누리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다. 독창성과 귀함의 존재가 돈의 끝자리에서 끝없는 가치의 매김을 정할 때 어느샌가 나와는 거리가 먼 다른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들려 현실감각이 없어지는 지금이다.

전시다 공연이다 예술이다 두 눈에 두 귀에 입에 들어가는데 한껏 공을 들여 몸 호강을 실컷 누리면서도, 함께 공유한 사람들과의 어울림에 짧은 지식을 방출하면서 그 짜릿함에 몸에 힘을 잔뜩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에고 멋있게 살기 힘들다’라는 생각에 헛웃음을 짓게 만드는 고단한 삶의 단편인 것이다.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상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경쟁의 삶 속에서 나를 위안케 하는 것은 어쩌다 들리는 유치 찬란한 트로트 가사에 나도 모르게 흥얼거림에 빠지는 나를 발견할 때다. B급 문화를 대표하는 싸이의 흥건한 땀에 출렁거리는 살몸짓에 픽 웃으면서도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의 말도 안 되는 가사를 듣고 유치뽕짝이야 하면서도 끝까지 가사에 귀를 기울이는 -단편적인 문구의 직설적 표현에 담긴 두꺼비 CF 한 편을 보면서 추억에 금빠(금방 빠지는)하는 나는 어느샌가 이른바 B급 문화- 병맛의 신선함에 푹 빠져 있는 것이다.

어디 문화에서만 그렇겠는가. 요샌 못생기고 흠이 있는 이른바 ‘B급 상품’들이 인기다. 맛이나 기능엔 정상품과 별 차이가 없으면서 가격은 싸기 때문인데, 이젠 대기업도 주목하는 블루오션 시장이 됐다. 변심이나 작은 흠으로 반품된 가구의 리-퍼브 상품이나 흠이 생긴 낙과나 농산물에도 이런 틈새시장이 생겼다. 폐기처분하기엔 너무도 멀쩡한 제품들이다. 잼이나 즉석식품 등으로 가공을 하거나 오히려 생산에서 생겨나는 작은 오류가 수집가들이 열광하게 만드는 타깃이 되어 버린 것이다.

패션에서도 한국의 아저씨 패션에 열광하는 해외 셀럽들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가 질색하는 샌들에 양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배색의 조화, 기능에 충실한 수납조끼, 일명 싼티, 날티, 촌티에 열광하게 된 데에는 이른바 B급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개성과 몸짓 속에 배어 있는 세상에 대한 자신들만의 당당한 태도, 개성을 드러내는 스타일에 쿨하게 남을 의식하지 않는 비주류들의 유머러스함이 담아져 있기 때문이다. 상위 1%와 B급의 차이는 정말 한 끗 차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묘한 문화적 동질감이 있다.

사람의 감정도 회귀본능이 있는 것일까? 화려함과 고귀함으로 잔뜩 졸라맨 무장한 삶에 올이 하나 풀리면서 느껴지는 흐트러진 B급의 여유가 이 힘든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될 줄이야.

옷에 구멍이 나도 슬쩍 털어 입고 나설 수 있는 배짱이 생긴 건 B급의 유치함을 인생의 과정으로 받아들인 이후에 생긴 일이다. 나의 가리어진 순수한 본성을 이끌어내는 B급 문화의 반란이다.

김희경 인천디자인기업協 대외협력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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