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카르텔과 공정한 사회

강릉의 오죽헌에 가면, 입구에 율곡 이이의 동상과 함께 견득사의(見得思義) “이득을 보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사회의 지도층 인사가 되면 상대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지위나 권한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려고 하고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요즘 인터넷이나 TV 뉴스에 ‘카르텔’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카르텔은 경제적인 용어로 가격, 생산량, 시장점유을 조정하기 위한 기업간의 담합을 의미하지만, 정치, 언론과 경제 권력의 카르텔, 대기업(재벌)과 주류언론, 제도정치권간의 파벌을 카르텔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카르텔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혈연, 학연, 지연 등 어떤 목적을 위해 서로 돕고 밀어주는 사람들 간의 연결고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카르텔은 마약 카르텔, 법조 카르텔, 침묵의 카르텔 등, 부정적인 뜻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마약 카르텔은 마피아와 비슷한 기업형 구조에 수직적 범죄조직으로 주로 마약을 생산, 밀매하여 수익을 올리는 집단이다. 법조카르텔은 강한 기수 문화 아래 결속된 일종의 사법시험 카르텔로 법조브로커들에 의한 법조비리 사건의 뿌리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침묵의 카르텔은 ‘체육계 미투’에서 불거진 것으로 사회집단이나 이해집단에서 불리한 문제 혹은 현상이 발생했을 경우 조직적으로 침묵하고 은폐하는 것을 의미한다. 침묵의 카르텔은 사회심리학적으로 보고도 못 본 척, 알고도 모르는 척하며 문제 자체를 덮는 일종의 담합행위이다.

카르텔은 특정 집단에 의한 독점을 야기하기 때문에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자율적인 공정경쟁을 가로막는다. 공정함을 뜻하는 라틴어 justitia는 법의 행위(practice of jus), 바른 행위(just practice)를 의미한다. 존 롤스(John Rawls)는 정의를 “공정성으로서의 정의”라고 정의했다. 그에게 정의는 나와 남의 자유가 양립할 수 있는 평등한 자유의 원칙, 약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때만 불평등이 허용된다는 최소수혜자 우선 고려 원칙, 직무와 직위가 만인에게 열려 있는 공정한 기회의 평등 원칙으로 구성된다.

공정성으로서의 정의란 공동체의 구성원들 가운데 낙오된 사람이 없도록 하는 평등과 서로 보살피고 존중하는 신뢰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 오늘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저마다 정의를 말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구현해야 할 올바른 정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정의와 관련한 문제들로는 대표적으로 입시 제도를 중심으로 한 교육시스템과 소득분배, 그리고 불공평한 법집행 등이 있다. 학업의 결과는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기회는 모두 균등하게 주어져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은 여전히 불공평한 기회와 경쟁구조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사회적으로 복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고 법조계에서는 전관예우, 스폰서 검사, 고액 수임료, 불공정한 재판 등, 법조비리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견득사의(見得思義), 이득을 볼 기회가 있을 때 무조건 챙기기보다 이것이 공정한 것인지, 의로운 것인지 반문하며 삼가는 공인(公人)의 자세가 그립다.

임봉대 국제성서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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