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뻔한 소리를 듣는 일이 많다. “운동하면 살 빠진다”, “착하게 살면 복 받는다”,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 “정의는 승리한다” 등등. 뻔한 소리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위정자의 허망한 약속과 종교인의 힐링을 빙자한 어쭙잖은 정신 위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유명인사의 ‘인생론’이나 ‘365일 오늘의 명언’도 살아나가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서양의 고전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김영민 교수는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고전을 미끼로 파는 만병통치약”이라고 지적했다.
동양 고전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뿌리를 발견했다거나 물질적 퇴폐에 맞서 인간성을 회복할 정신적 가치를 발견했다는 등 견강부회(牽强附會)식 억지가 우리를 힘들게 한다. 황희 정승의 ‘너도 옳고, 그도 옳다’식의 애매모호한 말과 ‘너도 틀렸고, 그도 틀렸다’식의 양비론도 뻔한 소리다.
뻔한 소리는 사실 무책임한 소리와 다름없다. 희망 고문일 뿐이고 허탈할 뿐이다. 뻔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첫째, 남을 가르치려 한다. 둘째, 자기가 신봉하는 것이 최고라고 주장한다. 셋째,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고 자기는 도망간다.
그런데 이런 뻔한 소리를 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소위 정치인과 지식인들이다. 그들의 언어는 위선과 선민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조선시대 주자학의 이념 독재로 점철된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현 정권의 내로남불과 정의가 마치 자기들의 전유물인 양 행동하는 모습이 똑같다. 그들은 정의와 신념을 앵무새처럼 말한다.
실제로 삶은 신념보다는 우연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경우가 훨씬 많다. 신념은 필연적으로 아집과 욕심으로 가게 돼 있다. 여기에 과도한 희망을 양념치게 되면 치명적이다.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유태인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과도한 ‘희망’이 사람들을 죽였다고 증언했다. 1944년 크리스마스 전후로 석방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 사망자가 급격히 늘었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을 넘었다. 과도한 ‘희망가’를 불렀으나 남은 것은 분열과 피폐, 절망과 암울뿐이다. 아직도 대통령과 측근들은 ‘뻔한 소리’만 하고 있다. 경실련이 조사해보니 청와대 공직자 65명이 보유한 아파트 가격이 평균 3억2천만 원 올랐다. 집값 평균 상승률이 40%에 이른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가격이 안정돼 있다”는 황당 발언을 내놨다. “거시적으로 볼 때 한국 경제가 크게 성공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 “남북 평화경제 실현에 모든 걸 쏟아붓겠다”,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등이 그것이다. 국민은 황당하다.
엄중한 상황에서의 말 한마디는 역경을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국민의 삶에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다.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199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의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대표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한 말이다. 그는 노벨상 수상식에서 “불의는 확산되고, 불평등은 심화하고, 무지는 늘어나고, 비참함은 커지고 있다”고 절규했다. 사라마구의 말은 2020년 대한민국에 유효하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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