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네 번째 스무 살, 아름다운 반짝임

인지도 있는 프로 가수들의 경연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거의 십 년 가까이 흐른 지금, 또다시 경연 프로그램이 인기다. 예전과 다른 점은, 가요계에서 비주류로 평가되던 장르인 트로트, 무명가수, ‘나’라는 날개를 펴지 못하고 살아온 주부, 꿈을 잃지 않은 일반인 등이 그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인물들이 무대에 올라오면 일단 친근함이 먼저 다가온다. 뛰어난 성량과 음률을 더해 끼를 발산하며 부르는 노래에는 그들이 살아낸 삶이 함께 녹아 있기에 뭉클한 울림은 더 크게 일렁인다. 그들이 버텨낸 삶은 나의 삶이기도 하고, 내 이웃의 삶이기도 하기에 공감의 눈물과 박수로 더 세찬 응원을 보내게 됨은 당연지사다.

‘스타’라는 소실점을 향해 집중하던 대중의 시선이 ‘나’와 내 주변으로 향하는 이러한 현상의 흐름은 출판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빛나는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는 이름하여 ‘순천소녀시대’라고 불리는 스무 분의 할머니들이다. 대부분 팔순을 넘긴 이들은 지난해에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는 책을 펴냈다. 이들의 공통점은 2015년까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으나 순천시 평생학습관 한글작문교실에서 김순자 선생님한테 글을 배웠고 순천시립 그림책도서관에서 그림책작가인 김중석 선생님한테 그림을 배웠다는 점이다.

은행 일도 혼자 못 보던 할머니들은 글을 알게 되자 말로 읊조리던 지나온 삶에 대한 소회와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종이 가득 글로 써내려 갔다. 그리고 동그라미, 세모, 네모도 그리기 힘들어했던 할머니들은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던 장면들을 형형색색 그림으로 그려내었다. 할머니들의 그림은 2018년 서울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2019년에는 미국 뉴욕의 미켈슨갤러리와 필라델피아 등 4곳에서 순회전시를 했으며, 볼로냐아동도서전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2020년에는 프랑스에서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할머니들이 살아낸 세월은 가난, 차별, 노동이 동반되는 가정 내에서 딸이었다가, 며느리가 되었으며, 엄마가 되었고, 할머니가 된 시간이기도 하다. 긴 삶에서 억눌림 속에 살았던 이들이 글과 그림을 배워 책을 출간하고 ‘나’를 찾아가는 모습에 독자들은 큰 박수를 보내고 더 큰 감동을 받는다. 물론 할머니들의 맑고 순수한 글과 그림 실력도 한몫을 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작가가 되어 그 작품들이 국내외에서 전시된다는 것 이상으로 가치 있는 점은 그들이 아름다운 풍광을 볼 때면 그리고 싶다는,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그 감정을 일상에서 느끼며 행복해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순천소녀시대 할머니들은 절대 특별한 분들이 아니다. 시골 어디에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우리들의 어머니이고 할머니들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느끼지 못하는 행복 속에서 오늘을 보내고 있다.

그들이 지금 느끼는 이 행복의 불씨가 점화된 곳은 순천시립 그림책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시민 그림책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1월에 ‘웃장상인 그림책’을 펴냈다. 순천의 전통시장 웃장에서 평생을 살아온 떡집, 방앗간, 국밥집 등의 상인들이 그들의 삶을 직접 담아낸 그림책이다. 순천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반짝임은 소실점과 원근법을 중요시하는 서양화보다는 개별적인 형태와 색채를 강조하는 우리의 민화와도 결이 닮아 보인다.

오승현 글로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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