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인간의 생존본능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에 대한 불안, 미래에 대한 불안은 인간이 노력하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만약 우리가 현실과 미래에 대해 너무 낙관적이고 불안이 없다면 개인의 발전은 물론 사회, 문화, 인류의 발전은 매우 더디거나 없었을 것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어찌 보면 우리 조상이 겪었던 전쟁이나 질병, 죽음 등 개인적, 집단적, 국가적으로 경험했던 공포적 경험들이 자손들에게 유전자를 통해 전달된 것일 수도 있다. 하물며 박테리아도 생존을 위한 불안이 있다고 보이는데 인간이야 더했으면 더했지 못할 리가 없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대해 판단을 할 때 불안이라는 감정은 인간이 좀 더 집중해서 생각하고 주변을 열심히 살피는 행동을 하게 한다. 전쟁 중에도 군인들이 가지는 불안은 생존력을 높이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적당한 불안은 우리에게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되지만 심한 불안은 독이 된다. 불안의 정도가 너무 심해지면 우리 이성은 불안이라는 감정에 지배당한다. 지배당한 이성은 불안을 느끼는 이유를 합리화하거나 불안을 빨리 없애려는 쪽으로만 진행된다.
특히 죽음에 대한 공포불안을 일으키는 상황은 우리 이성을 재빨리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1920년대 초 일본에 심한 지진이 발생하여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40만 명에 달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일본사람들을 지배했다. 일본사람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고 이런 여론을 느낀 정부는 공포가 분노로 바뀌어 정치권으로 옮겨붙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심하게 느꼈다. 극심한 불안이 이성을 지배하면서 결국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어느 순간 조선사람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사회 폭동을 모의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일본사람들은 그간 느꼈던 공포불안만큼이나 분노를 느꼈고 이런 소문은 조선사람들을 대량학살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람들은 조선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했고 국민은 이를 용인했다. 결국 2천~6천 명의 무고한 조선사람들이 소위 자경단이라는 조직에 살해당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이렇듯 극심한 불안은 이성을 지배하고 나아가 생각을 지배한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공포가 우리나라를 포함 전 세계인들을 공포로 몰고 있다. 치료제로 쓸 약이 없어 걸리면 끝장이라는 공포,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임으로 피할 수 없다는 공포는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불안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공포임으로 우선 이런 감정을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인정해주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공포불안이 외국인에 대한 혐오나 분노, 정부에 대한 근거 없는 분노로 연결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현실은 다르다. 감염환경도 다르고 의료수준도 다르다. 아직 우리나라 감염자 중 사망자는 한 명도 없다. 마치 중국처럼 우리나라도 곧 많은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는 불안은 근거가 없는 내용이다. 미세먼지용 전문마스크 아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고, 우리 신체 면역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부도 혹 국민이 알아야 할 내용이 있다면 숨기기에 급급하면 안 된다. 알릴 것은 알리고 잘못된 정보에 대해서는 신속하고도 정확히 교정해주어야 한다.
정재훈 한국정신보건연구회 정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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