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개성에 남북협력 의료센터를 만들자

북한은 지난 17일 동평양 문수거리 인근에 평양종합병원을 착공했다. 기존에 계획된 사업을 조정하면서까지 병원 건설에 필요한 자재와 설비를 앞당겨 공급해 오는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일에 완공하는 것이 목표다. 당초 종합병원 건설 계획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올해 초 중국의 코로나19 상황을 보고 ‘200일 내 완공’ 속도전을 추진하게 됐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 여러 선진국들도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시설이 미비한 북한으로서는 매우 심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평양종합병원의 위치가 특이하다. 평양에는 대동강을 가로지르는 2개의 경관축이 있는데, 하나는 김일성 광장과 주체사상탑을 연결하는 축이며 다른 하나는 만수대 언덕과 당창건기념탑을 연결하는 축이다. 이렇게 중요한 두 번째 축선 상에 건물을 지어서 경관을 막아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사실상 이곳은 조망을 위해 비워두었던 공간이라서 길쭉한 장방형이기 때문에 대규모 시설이 들어서기엔 통상적 기준으로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제약을 극복하고 설계된 건물은 오히려 상당히 현대적인 스타일을 갖추게 됐다.

여기에서도 김정은 시대에 크게 달라진 북한의 모습이 엿보인다. 평양종합병원 부지 선정은 과거 유산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주의적인 접근이다. 기존에는 만수대 김일성·김정일 동상에서 대동강 건너편 당창건기념탑이 바로 내려다보였지만 앞으로는 평양종합병원이 보이게 된다.

현재 북한은 코로나19를 차단하기 위해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국경을 봉쇄하고 있으나 이를 무한정 지속하기는 어렵다. 경제제재가 완전히 해제되기 전까지 북한이 기대할 수 있는 사업은 관광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원산·양덕·삼지연 등 주요 관광지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하지만 의료시스템이 미비한 상태에서 대규모 관광객이 유입되는 것은 재앙이 될 수 있다. 다른 국가들의 상황이 호전된 이후에도 북한에게는 여전히 큰 위협으로 남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다른 어떤 경협에 우선해서 보건의료 분야 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북한 주민의 건강은 당장 남북한 교류를 위해서나 미래 한반도 인적자원의 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다. 단순히 약품과 물자를 지원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규모로 의료장비를 공급하고 북한 주요도시에 종합병원을 건설해서 의료 수준을 선진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최소한 관광과 보건의료 시설에 대한 투자는 경제제재 면제 조치가 필요하다. 최근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서울과 평양을 연결하는 경의선의 거점 개성에 남북협력 의료센터를 만들자. 북한 의료진을 양성하는 의과대학을 설립하고, 의료장비와 약품을 생산하는 기지로 활용하는 것이다. 또한 DMZ 국제평화지대 및 생태공원과 연계한 의료·휴양·컨벤션 시설을 갖추어 세계적인 의료 관광지로 육성하자. 개성공단이 한반도를 대표하는 의료산업 클러스터로 성장해서 여기서 생산된 의료품이 전 세계로 수출되는 날을 꿈꿔 본다.

민경태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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