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온 세상을 뒤엎는 천하개병(天下皆病)의 대란(大亂)이라는 참상을 일으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류가 고통받는 것처럼 짐승 곤충들도 바이러스, 전염병, 살충제, 전자파 등으로 생존위기에 직면해 있다.
2008년 국내에서 처음 발생, 2010년 전국으로 번진 유충썩음병(낭충봉아부패병)으로 꿀벌 집단 폐사 사례가 자주 일어났다. 전국 토종벌 벌통 수는 42만여개에서 2016년에는 1만개(2%)로 줄었다. 지금은 그나마 회복됐는 데도 3만~10만개 수준이다. 토종벌 농가도 과거 2만가구에서 이제는 300가구 정도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을 방치하면 토종벌 자체가 사라져버리고 생태계에는 큰 재앙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토종꿀벌(재래꿀벌)은 서양 꿀벌과 달라 위기를 맞아도 대체수단이 없어 생태적으로 서양 꿀벌에 밀리고 번식력도 약해 멸종위기에 처했다.
꿀벌 감소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2005년 미국, 2년뒤 캐나다 등지에서도 꿀벌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잦은 이동과 밀집사육, 바이러스 감염, 농약중독 등이 군집붕괴현상 원인으로 꼽혔다. 미국은 2006년에 비해 꿀벌이 40% 감소했고, 유럽은 1985년에 비해 25%가 줄었다. 특히 영국은 2010년 이후 45%의 꿀벌이 사라졌다. 이런 속도라면 2035년쯤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꽃가루받이를 통해 생태계를 유지해온 꿀벌의 멸종위기는 이제 글로벌 이슈가 됐다.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가운데 71%, 식용으로 재배하는 1천500종의 작물 중 30%는 꿀벌이나 곤충의 꽃가루받이에 의존해왔다. 그린피스는 꽃가루받이를 통해 꿀벌이 제공하는 경제적 가치를 전세계적으로 370조로 평가했다.
2008년 정철의 안동대학교 교수는 우리나라 주요 작물 75종 중 52%를 차지하는 39종의 작물이 꿀벌과 같은 곤충 화분매개에 의존하고, 특용작물·원예종자·의약품 생산 역시 꿀벌을 활용한 화분매개 도움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꿀벌의 국내 농업생산액 기여 규모를 측정한 결과, 과수·과체 등 작물 5조원, 특용작물·원예종자·의약품 9천억원 등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2018년부터 당시 대통령이 적극 나서 화재로 손실된 숲을 가꾸는 등 생태계를 재건하고 꿀벌의 서식지를 보존하는 방법 등을 국가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본도 2012년에 ‘양봉진흥법’을 제정하는 등 선진국들은 자국 양봉산업에 대한 지원과 보호체계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꿀벌 보호를 위한 ‘양봉산업육성법’이 8월부터 발효되지만 기후변화 등 대내외적 여건이 녹록치 않다. 지역 토종벌농가들이 토종벌질병관리팀 결성해 낭충봉아부패병 퇴치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는 지금의 양봉산업 위기를 직시해 꿀벌 관련 전담부서 설치와 인력 확보, 병해충에 대해서는 봉군 규모별로 해충 발생 봉군의 소각비용을 지원하는 등 정부차원의 양봉산업 육성 및 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꿀벌을 살리는 일은 꿀벌과 자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이제 꿀벌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박종렬 가천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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