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다. 시인 곽재구는 ‘그 오월에’라는 시에서 젊은이들에게 ‘그 오월에 우리는 사랑을 찾았을까’라고 물었다. 오월은 시인이 젊은이에게 사랑을 묻게 하기도 하지만, 가족의 의미를 거듭 되새기게도 한다.
일부 극단화된 철학 또는 종교적 관점에서는 가족애란 자연의 맹목적인 한 모습으로, 사회의 계층구조를 고착시키기 위한 기득권의 어떤 암묵적 음모라고 보지만, 가족애란 주고받는 사랑의 의미를 깨달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점만으로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본래 유전자에 각인된 것으로 처음에는 자연의 명령에서 비롯되었겠지만 사회 진보에 따라 가족의 의미가 확장되면서 인간의 가치를 유지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원으로서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가족애가 타인의 고통을 기반으로 성립되어서는 안 된다. 남의 자식들을 해쳐 자기 자식만을 살찌운다면 사랑의 의미를 완전히 왜곡하는 일이다. 공동체의 안위를 심각하게 위협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 공동체를 위해서는 지나치게 이기적인 가족애는 제한되어야 하며, 사랑은 공의에 따라 합리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사랑의 합리성이란 사랑을 수학적으로 실천하는 데 있다.
오래전부터 수학은 전쟁에 있어서도 적용됐다. 제2차 세계대전시 영국과 독일이 제해권을 놓고 다투고 있을 때, 영국의 수학자 윌리엄 엘더슨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몇 척의 배로 운송하는 것이 적의 공격을 피해 최소의 피격으로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데 있어 최선인가’에 대해 대수의 법칙과 확률론을 이용해 해답을 얻어냈고, 그 결과는 처칠에게 채택되어 독일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사랑의 수학적 실천을 대표하는 금융이 보험이다. 보험은 자기 자산이 많아야 혜택을 받는 여타 금융과는 달리 어려움에 처한 약자를 돕기 위한 제도로서 출발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를 이 정도로 진정시키기까지는 헌신적인 의료진, 사명감뿐만 아니라 영리하기까지 했던 정부·관련 공공기관의 덕분이기도 하지만, 약자 친화적인 건강보험제도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최소한 우리나라에서 공영·민영보험을 막론하고 보험은 사랑의 범위를 확대하여 수학적 법칙에 따라 인간의 연대를 이끌어냄으로써 피해자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제도로서 작용한다.
다만 보험이 그 사명을 온전히 다하려면 통계학적으로 사고발생확률을 낮춰야 한다. 재정건전성이 유지되어야 장기적으로 보험금 지급이 가능하며 보험료가 낮아야 가입자들의 부담이 줄어든다. 이를테면 확률교란이 발생하면 안 된다. 불필요한 과잉진료나 보험금 허위청구 등이 확률교란을 일으킨다. 따라서 공사보험을 막론하고 보험사기 같은 불법행위를 근절해야 한다. 보험사기 근절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법의식은 물론 법집행기관의 적극적 수사와 기소 등이 요구된다. 관련 공공기관에는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하고 민간 조사권을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버트런드 러셀’은, ‘사람은 평생 살면서 이성·지식·약자에 대한 사랑을 한다’고 하였다. 우리 사회가 고도화 또는 복잡화될수록 사랑은 수학을 통해 더욱 정교하게 실천되어야 한다. 사랑의 수학적 실천을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시대의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다.
김성훈 손해보험협회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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