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의 보이콧 속에 선출된 박병석 신임 국회의장은 국민의 국회, 국민을 지키는 국회, 국민이 원하는 국회, 국민의 내일을 여는 국회를 당부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신임 국회의장의 이와 같은 메시지가 지금까지 국민의 국회가 아니었다는 반증이며, 21대 국회에서 실현될 것이라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20대 국회의 입법 성적은 낙제에 가깝다. 4년간 발의한 법안의 3분의 1 정도만 처리했을 뿐이다. 20대 국회에서는 총 8천904개의 법안이 처리됐다. 그마저도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141건의 안건이 2시간40분 만에, 1분13초마다 하나의 안건이 처리됐기에 가능했던 수치다. 17대 58%, 18대 55%, 19대의 45%와 비교해 확연히 부진한 성적표다.
입법부가 법을 무시한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져 후속 입법이 필요했던 법안의 처리 시한을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을 단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 공정한 피감기관 감시를 위해 상임위 배정 시 ‘이해충돌 회피’를 명시하고 있는 국회법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자초하기도 했다. 20대 국회가 최악국회, 식물국회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는 결국 입법부로서의 역할 방기였다.
그렇다면 21대 국회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로는 21대 국회 또한 그다지 큰 기대를 하기 어려울 듯 보인다. 매니페스토실천본부 발표에 따르면 GTX, KTX, 철도, 고속철, 지하철, 전철, 도로 등 SOC 공약이 후보자들의 전체 공약에서 14%를 차지했다. 입법 공약은 거의 없고 건설, 조성, 유치 등 지역개발 사업이 국회의원 공약의 대부분이었다. 희망상임위도 국토교통위 45.9%,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산자위) 31.5% 등이었고, 성평등 실현 등을 다루는 여성가족위는 2.5%에 불과했다.
이를 두고 국토교통위와 산자위에 소속된 의원들은 생환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것을 핑계로 유야무야 넘기려 할 뿐이다.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 20대 현역 의원 전체 당선 비율은 41.7%였으나 국토교통위 소속 의원의 생환율은 56.7%로 가장 높았다. 산자위 소속 의원들도 평균 생환율보다 높은 44.4%였다. 하지만 이들 상임위 경험을 가진 위원 중 금품수수 등 비리나 논란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거나 구속된 의원들이 다수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입법권을 사유화한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이해충돌 회피’를 명시하고 있는 국회법 48조 7항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자금 수수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인 국회의원들이 앞다투어 법제사법위를 지망하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금융기관 채용비리 사건에 연루됐던 의원은 버젓이 정무위 배정이 거론되고 있다. 부동산 정책과 세법을 다루는 국토교통위와 기획재정위에 부동산 부자의원들이 몰리고 있다.
이쯤 되니 국민의 국회로 거듭나겠다는 신임국회의장의 국회 당부가 현실화될지 강한 의문이 든다. 어쩌면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적 이익을 위해 일을 너무 열심히 할까 봐 두려운 것이 현실이다.
너의 섬, 여의도(汝矣島). 서민의 고단한 삶과 함께할 때, 입법부로서 역할에 충실할 때, 지역의 이익을 넘어 공존의 가치에 충실할 때, 특권을 내려놓고 국민의 봉사자로 일할 때만이 국민의 국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아직은 국회에 거는 기대가 남아있기에 드리는 고언이다.
오현순 매니페스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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