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다큐멘터리(EBS다큐프라임 ‘녹색 동물’)를 통해 헛개나무가 어떻게 숲을 채우는지를 보았다. 헛개나무 씨앗은 껍질이 두꺼워서 자연 상태에서는 발아율이 아주 떨어진다고 한다. 불과 0.8%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숲에 헛개나무가 건재한 것은 발아를 돕는 협력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 협력자는 산양이다. 산양은 겨울 숲에서 먹을 것을 찾다가 헛개나무 열매를 다 먹는다. 그 열매의 과육은 소화되고 씨앗은 소화액과 뒤섞여 껍질이 얇아진 채 배출된다. 헛개나무 씨앗은 산양의 배설물 속에서 영양을 취하며 싹을 틔우고 자라난다. 발아율이 무려 32.5%라 한다.
자연의 신비이다. 먹힘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질병, 실패, 외로움, 가난, 모욕 등이 찾아오면 우리는 당황한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빨리 떠나보내려고 한다. 당연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부정적인 현실들은 어쩌면 우리들의 자아의 벽을 엷게 만드는 산양의 소화액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아라는 감옥 속에 갇혀 있던 인간 본연의 성품의 씨앗이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발아되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이 위기 속에서 본질을 고민하게 하는 시간이다.
교육의 진짜 목표는 무엇이 돼야 할까. 거창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했던 전성은 선생은 “교육은 평화를 위한 목적 이외의 어떤 목적으로도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그는 대단히 단호하다. 남을 억누르고, 짓밟고, 빼앗는 일이 없는 세상의 꿈은 교육자들의 꿈이 되어야 한다.
여기저기서 청소년들의 일탈 행위가 도를 넘고 있다. 필자는 그들이 유난히 악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이들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이들이다. 다른 이들을 수단으로 삼는 일이 일상이 된 무정한 세상이 그들을 괴물로 만들었다. 아브라함 조슈아 헤셀은 “희랍인들은 이해하기 위하여 배웠다. 히브리인들은 공경하기 위하여 배웠다. 현대인들은 사용하기 위하여 배운다”라고 말했다. 현대인들은 ‘아는 것이 힘’이라는 표어를 내면화하고 산다. 자기를 쓸모 있는 존재로 만들어 상품으로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우리는 다시 교육의 본질적인 목표는 무엇이고 학교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인터넷이 발달한 오늘 지식의 분량은 급격히 늘어나지만 인간성은 나날이 쇠퇴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들은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지만, 참사람이 되기 위한 지식은 검색을 통해 얻을 수 없다. 그것은 깊은 사색과 성찰 그리고 사랑의 실천과 불의에 대한 투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한 시인은 어린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의 문은 열었지만 교육의 본질을 다시 점검하고 비본질적인 부분을 내려놓고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녀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기를 원하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런 의미로 이런 위기가 또 다른 기회임을 기억하게 된다.
안해용 경기도교육청 학생위기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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